Sunday, November 25, 2012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푸치니의 "투란도트"(Turandot)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에서 오늘 라이브 생중계로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방영하였다. 6년전에 뮌헨을 뜬 이래 독일 오페라나 독일 성악가들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같이 떠오르던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 출구 없는 오페라의 블랙홀로 빠지게 된 것도 그곳을 열심히 드나들며 몬테베르디부터 쇤베르크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원없이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서양이 막고 있어 직접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터넷으로나마 예전의 설레고 감동적이었던 경험을 다시 할 수 있게 참으로 기쁘다. 이 좋은 공연을 회원가입이나 돈 받는 것 없이 전적으로 무료로 보여준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오늘 본 "투란도트"는 이번 시즌 메트에서도 하고있는 작품이다. 보수적인 미국 청중의 취향에 맞게끔 제피렐리의 클래식하고 화려한 연출이다. 이에 반해 바이에른의 연출은 미래주의, 사이언스 픽션이 컨셉이다. 이점에 있어선 주빈 메타가 지휘한 발렌시아의 "반지" 사이클과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이다.

바이에른 오페라의 "투란도트"는 시대적으로는 2046년, 빚더미에 올라앉은 유럽대륙이 중국에 넘어감과 동시에 유럽이 중국의 지배를 받는다는 설정이다. 의상이나 분장은 전통적인 "authentic"한 중국과는 거리가 멀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오리엔탈 풍(중국과 일본이 묘하게 섞여있다)이 주가되며 조명은 비닐이나 메탈 소재에서 나오는 번뜩이는 빛, 도시의 네온 싸인이 지배한다. 최신 트렌드에 발맞추어 비디오 프로젝션이 효과적으로 쓰이며 때때로 서커스적인 요소들도 가미된다. 예를들어 덤블링 묘기, 비보이들이 하는 것과 같은 현란한 춤,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있기, 피아노줄 타고 날라다니기 등은 마치 로버트 르파쥐의 "태양의 서커스"를 보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1막에서는 투란도트 공주에 대한 구혼자 중 한명인 페르시아 왕자가 사형당하는 장면에서는 높은 단상 위에 선 왕자의 몸 주위에 묶여진 끈을 통해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익숙한 거열형을 암시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2막에서 황제가 등장할 때 우리나라의 징 비슷한 악기들을 쓰는데 이때 카메라가 무대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석을 비춰줌으로써 이국적인 독특한 음향, 음색 효과에 대해서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는 점도 지적으로 보였다(카메라 잡는 사람이 확실히 음악에 대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칼라프 왕자가 투란도트 공주의 수수께끼를 풀 때마다 비디오 이미지를 통해 빙하(이는 투란도트 공주의 icy princess를 표상한다)가 산산히 무너지는 것을 보여준 것 또한 효과적인 드라마적 장치였다. 동시에 높은 곳에 매달려있던 공주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오게 한 것도 공주의 차가움과 비인간성이 칼라프의 용기와 도전정신에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음을 공간적으로 잘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3막의 초반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칼라프 역의 이용훈 님이 멋있게 불러주었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노예소녀인 류(Liu)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무대인사 하러 나오신 이용훈님. 선배님 자랑스러워요!! 노트북을 찍은 것이라 사진 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전체적으로 최신의 연출경향(비디오, 서커스적 요소, 테크놀로지)을 모두 반영한 화려함과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무대였다. 가수들 노래또한 훌륭했으며 지휘자(마르코 아밀리아토)의 박력있는 해석 또한 무대 연출과 잘 부합하였다.

공연을 보고난 후 떠오른 생각은 바로 노예소녀인 류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비록 제목은 "투란도트"이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진정한 주인공은 류인 것으로 보였다. 칼라프와 그 아버지인 티무르를 위해 끝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최후에는 죽음으로써 투란도트에게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류. 이에반해 처음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투란도트 공주는 막판에 가선 정신적으로 칼라프의 용기에 굴복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류의 희생정신에도 감복하는 "수동적" 캐릭터로 결론나고 만다. 오페라 또한 류에 대한 찬양의 말로 끝나며("Liu, all goodness! Forgive us! [...] Liu! Poetry!") 그녀의 희생을 더 없이 숭고한 것으로 만드는 일종의 "제의"로 끝맺는다. 이쯤해선 마치 바그너의 "반지"의 최후를 장식하는 브륀힐데의 자기희생적 "제의"와 비교해서도 완전히 같진 않지만 어느정도 병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투란도트를 맡은 이레네 테오린과 함께 무대인사 중인 이용훈님. 

시작은 투란도트였으나 끝에가선 류의 드라마로 끝나버린 오페라. 투란도트는 그녀를 존재를 정의하던 철의 장막이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며, 류는 노예소녀라 할지라도 결국엔 숭고한 대상으로 승화되기 위해 존재한다. 주연과 주연을 다루는 방식, 그 목표점을 향한 여정에 있어 푸치니의 이 두 여성 캐릭터 취급은 우리의 관습과 일상적 기대를 벗어나있다. 이는 아마도 푸치니가 "투란도트"를 끝까지 다 못쓰고 죽어버린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오페라를 끝까지 썼다면 투란도트와 류에 대한 이 어정쩡한 드라마적 긴장관계가 좀 더 부드럽게 조율되지 않았을까. 


*투란도트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1막의 피날레이다. 류의 애절한 아리아인 "Signore, ascolta"로 시작해 칼라프의 "Non piangere, Liu"로 이어지며 마지막엔 세명의 대신들(핑, 퐁, 팡), 칼라프, 티무르, 류, 코러스가 함께하는 콘체르타토로 끝난다. 음악이 진행되면서 템포도 점차 빨라지고 분위기도 더 극적으로 변한다. 

벨리니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Golden Age" (맨하탄 씨어터 클럽)

방금 뉴욕타임즈에서 발견한 연극에 관한 소식. 오페라 작곡가인 벨리니가 주인공이며 그의 마지막 작품인 "I puritani"(청교도들)이 파리에서 초연되는 것을 소재로 하고있다. 이탈리아 작곡가의 이탈리아 대본 오페라가 왜 굳이 파리에서 상연되는 것에 주목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지만 음악사, 특히 오페라사 책을 읽다보면 파리 무대는 당시 한자리 한다는 오페라 작곡가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시험대와도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19세기 전반, 오페라의 중심은 파리였다. 중앙집권식 정치 시스템하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그와 더불어 통제)를 받는 파리 오페라는 이탈리아나 독일 오페라 하우스에 비해 예산도 훨씬 많았으며, 숙련된 합창단, 프로페셔널한 무대제작진 등 당대 오페라 작곡가들이라면 꼭 일해보고 싶은 꿈의 무대였다. 비록 한 작품 올리는데 행정적으로 복잡한 절차 및 상대적으로 긴 제작 및 리허설 등의 과정이 수반된다 할지라도 그 완성도나 수준높은 무대효과에 있어서는 이웃 나라의 기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벨리니 이전에 이미 롯시니가 이탈리아에서의 성공적 커리어를 바탕으로 파리로 이주, 그곳에 정착하여 "모세", "오리 백작", 그리고 최후의 걸작이자 그랑 오페라(grand opera)로 분류되는 "윌리엄 텔"을 작곡한다.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또한 파리의 오페라 코미끄(opera comique)를 위해 쓰여진 작품이다.

벨리니는 대도시 또는 오페라적 전통이 강한 나폴리가 아닌, 상대적으로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시칠리섬 출신에다, 소심하고 질투심도 많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쪼잔한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시골 출신이라는 잠재적 열등감 및 화병 나기 쉬운 성격때문인지 명또한 길지 못해 34세라는 나이로 파리 근교에서 사망한다.

연극은 12월4일날 맨하탄 씨어터 클럽에서 시작할 예정이란다. 테렌스 맥낼리(마리아 칼라스를 다룬 "Masterclass"의 극작가이기도 하다)의 각본에 리 페이스(Lee Pace)가 벨리니역을 맡았다. 페이스는 작곡가 캐릭터를 좀 더 심도깊게 이해하기 위해 벨리니의 고향인 시칠리아를 방문했다고 한다. 음악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쪼잔하고 소심한 "인간적" 벨리니로 그려질 것인지, 아니면 벨리니의 "마지막" 작품의 첫날밤이라는 역사적 의의에 부합해 보다 "비범한 천재"로 그려질 지 사뭇 궁금하다.



*"Golden Age"의 프리뷰 영상. 연극 보러가기 전 오페라 "청교도들" 먼저 본다면 연극을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Golden Age" 관련 기사


Saturday, November 24, 2012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엘렉트라"(Elektra)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는 예전에 뮌헨에서 2005-2006 시즌에 봤었고 재작년인가 메트 오페라에서 봤었는데, 고전적인 메트 보다도 바이에른 주립오페라가 훨씬 내 기억에 인상깊게 남아있다. 오늘 유툽 돌아다니다가 그때 봤었던 뮌헨 버젼을 우연히 찾았다. 바이에른 주립오페라에서 한건 아니지만 그 사촌이라 할 수 있는 뮌헨필과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참여한 공연이다.

비단 "엘렉트라" 뿐만이 아니라, 여태 본 오페라를 통틀어서 이 공연은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유는 바로 독특한 연출 때문. 미니말리즘의 극단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순한 무대 (무대 소품도 거의 안 쓴다), 이에 부합해 조명또한 다채로움을 피한 채 붉은색과 하얀 빛이 중심이 된다. 뭔가 휑해 보일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무대 전면에 또 하나의 큰 벽을 놓음으로서 공간적으로 상당히 밀폐되고 답답하면서도 숨쉬기도 힘들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그 무대를 바라보는 청중들이 폐쇄공포증을 겪게할려고 작정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

이쯤해선 왜이리 무대를 답답하고도 비좁게 만들었냐는 불만이 있을법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는 "엘렉트라"가 전달하는 전반적인 드라마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합치된다. 아버지를 살인한 어머니와 숙부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지만 실제 오페라 상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복수에 이를 가는 엘렉트라, 그에비해 다소 소심하게 그려지는 여동생 크리소테미스, 그리고 엘렉트라 포스에는 다소 못미치는 아우 오레스테스. 이들에 대항해 언젠가 엘렉트라에게 죽어야할 악역이자 제물로 상정된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드라마상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엘렉트라가 클리템네스트라를 도끼로 죽이는 장면인데, 이 장면을 제외하고선 이목을 사로잡을 스펙터클한 장면이나 따로 솎아낼만한 사건은 거의 없다.

그래서 "엘렉트라"의 드라마적 중심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오페라 전체를 관통하는 강렬하고도 말초적인 긴장감이다. 무엇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으스스하면서 음울한 분위기, 광인처럼 보이는 엘렉트라의 복수에 가득찬 감정(이 복수심은 바로 엘렉트라의 실존을 정의한다), 이에 맞서 아가멤논 왕의 살인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이들이 내뿜는 심리적 갈등관계, 첨예한 대립이 바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궁전을 그대로 그린 사실적 무대가 아닌, 클립에서 보는대로 모던하면서도 압축적인 무대는 그러한 드라마적 긴장감을 극대화시켜 전달하는 효과를 낸다. 시각적인 눈요깃거리를 최대한 배제한 이러한 무대는, 동시에 또다른 긴장의 요체인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끔 한다. 포스트 바그너리안 음악어법의 극단을 이끈 슈트라우스 작품답게, 사실 음악만 들어도 "엘렉트라"의 강렬한 파토스가 고스란히 전달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팽팽한 긴장감이 지배하는 무대는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음악적 색채와 심리적 히스테리아를 중간 매체를 통하거나 방해물(distraction) 없이 "직접적"으로 청중에게 전달되게끔 한다.

이 연출에서 또하나 주목할만한 대목은 클리템네스트라를 도끼로 살인하는 장면이다. 이때 엘렉트라는 무대 뒤로 사라지지 않고 무대상에 그대로 있으면서 도끼로 땅을 찍어내린다. 그 행위가 보이는 바로 그 순간, 그 도끼에 살해되는 클리템네스트라의 비명 소리가 무대 뒤에서 처절하게 들린다. 이 살인장면은 그 잔인성 때문인지 몰라도 메트 연출에서는 엘렉트라가 무대 뒤로 들어가서는 클리템네스트라 더불어 모두 무대 뒤에 안보이게 하는 것으로, 그래서 음악만 들리는 것으로 처리되었었다. 그러나 클라이막스이자 엘렉트라의 드라마상 존재 이유가 실현되는 바로 그 순간에 주인공이 무대 뒤로 사라진다면 그 극을 보는 관객 입장에선 다소 김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무대 위에 엘렉트라가 그대로 있게 하며(주인공의 무대 존재, stage presence의 유지), 도끼로 사람이 아닌 땅을 내리찍는 행위를 함으로써 살인 장면을 "암시"하되 극단의 비명소리가 무대 뒤에서 들려짐으로써 클리템테스트라의 살해를 "실현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여태까지 유지되었던 극적 긴장감이 끊어지거나 줄어듬 없이 극대화된 채 그 정점을 찍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던한 연출은 작곡가 고유의 텍스트를 변형, 왜곡 시키거나 감독의 에고가 작곡가의 에고를 넘어서려는 만용이 느껴질 때가 많은지라 왠만하면 잘 마음이 가지 않는 편인데, 이번 "엘렉트라" 연출은 모던한 연출이되 드라마에 대한 관점이 작품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고 생각되기에 상당히 맘에 든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하는 뮌헨필. 엘렉트라는 린다 왓슨, 클리팀네스트라는 제인 헨셸, 오레스트는 알버트 도만. 제인 헨셸은 5월에 카네기홀에서 열린 "살로메" 콘체르탄테 공연 때 헤로디아스 역을 불렀었는데, 음색이나 연기력에 있어 가히 슈트라우스 스페셜리스트라 할만큼 뛰어난 해석력을 보여주었다. 

Friday, April 13, 2012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오늘 페이스북에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클립이 올라온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선율이 너무나도 아름다움과 동시에 옛날에 오케스트라랑 같이 연주도 했던지라 나한텐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게다가 최근에 스승님께서 쇼팽의 선율 작법과 19세기 벨칸토 오페라의 성악 선율구조 간 긴밀한 연관 관계에 대해 수업 시간에 자료도 나눠주시고 실제 예들을 보여주셨던지라 언젠가 시간되면 다시 쇼팽 악보를 들여다봐야지 하고 있었다. 음악사 책에 쇼팽이 벨리니의 오페라를 상당히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런 면이 실제로 구체적으로 쇼팽의 음악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악보와 문헌자료로 본적은 그때 수업 시간이 처음이었다.

역시나...다시 들어보니 쇼팽의 선율들은 정말 성악적이다. 긴 오케스트라 서주이후 나오는 주 선율은 피아노 대신 음성이 연주해도 될 듯 하다. 선율을 꾸미는 세세한 장식음 또한 벨칸토 아리아의 관습에서 따온 것. 스승님께서 예전에 "쇼팽과 벨칸토 오페라"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셨던 적이 있는데 얼른 원고 보여 달라고 이메일 드려야겠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악장 재현부.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상당히 성악적으로 들린다. 

원래 5월달에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쇼팽의 1번을 카네기홀에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랑 협연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 문제로 취소되고 다른 연주자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폴리니의 1번 연주를 내 인생에 라이브로 듣는 날이 왔다고 정말 좋아하고 있었으나...아쉽게 되버렸다.

Wednesday, April 11, 2012

오베르의 "포르티시의 벙어리 아가씨"(La Muette de Portici)와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

어제 스승님께서 뉴욕 타임즈에 올라온 아티클이라며 전체 메일로 기사를 보내주셨다. 기사는 프랑스 그랑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인 오베르(Daniel-François-Esprit Auber)의 작품인 "포르티시의 벙어리 아가씨"가 라 스칼라에서 공연된 것에 대한 리뷰인데, 오베르가 바그너에 끼친 영향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이 오페라는 사랑도 잃고 가족까지 죽어버린 여자 주인공이 절망에 빠진 나머지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엔딩이 바그너의 작품과 연관이 된다. 그 자살 행위는 한편으로는 성벽 위에서 뛰어내리는 토스카의 엔딩과 일단 비슷하긴 한데, 구체적으로는 용암이 분출 중인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는 점에서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의 마지막에 브륀힐데가 불타는 라인강 속으로 반지를 품고서 뛰어드는 것과 상당히 흡사하단다.

아래는 그 단락 원문과 번역.

"The ending of 'La Muette' is the kind of grand-opera extravaganza Wagner must have had in mind when conceiving the close of “Götterdämmerung,” though confusion exists among commentators about what actually happens. Fenella, still smarting over her abandonment by Alphonse and now grief-stricken after Masaniello’s death, hurls herself to a Tosca-like death. Some say she jumps into the crater of Vesuvius as it erupts, but the better — and certainly more plausible — reading of the stage directions is that she jumps into the lava of the erupting volcano."

“'벙어리 아가씨'의 엔딩은 그랑 오페라의 휘황찬란함의 전형인데, 이는 바그너가 “신들의 황혼”의 결말을 만들 때 염두해뒀을 것이라 생각된다. “벙어리 아가씨”의 마지막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논평가들마디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알퐁스에게 버림받은 것에 상처받은 페넬라는 이제는 마사니엘로의(페넬라의 오빠) 죽음 이후 슬픔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서 토스카의 비슷하게 자신을 [죽음의 나락으로] 던져버린다. 어떤이들은 그녀가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할 때 그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대 지시를 좀 더 그럴듯하게 해석한 것은 그녀가 분출하는 화산의 용암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오베르의 이 오페라는 공연이 잘 안되는 듯 하지만, 바그너 작품에 나타나는 그랑 오페라의 영향을 연구함에 있어 반드시 눈여겨 봐야하는 작품이라 음악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하다 할 수 있다. 혹시나 음반이나 영상이 있는지 찾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알프레드 크라우스와 준 앤더슨이 주연으로 노래한 음반이 하나 보인다. 

*유툽에서 찾은 "벙어리 아가씨"의 피날레. 비록 영상은 없지만 긴박하고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잘 전달되는 듯. 실황 공연을 정말 보고싶어진다. 



Friday, April 6, 2012

Tristan und Isolde-메트로폴리탄 오페라 2016

최근 우연의 일치로서, 수업관련 활동(논문 읽기 또는 페이퍼 쓰기)하다가 잠시 기분 전환겸 인터넷 들어가서 페이스북이나 뉴욕타임즈를 보면 항상 작업 중이던 토픽과 관련된 것들이 한눈에 잡힐때가 많다.

내일 수업 준비를 위해 트리스탄 코드를 분석한 논문들을 읽는 중이었다. 스승님을 포함한 세명의 대가들이 트리스탄 코드에 대해 화성학적으로 과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를 주고받은 것이다(Tristan chord: viio7, French 6, suspension to V7 etc.). 그러다 잠시 기분전환 겸 뉴욕타임즈의 음악 섹션에 올리온 Peter Gelb(메트 오페라 총책임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런데 너무너무 중요한 정보 발견!!! 인터뷰 본문 중에

"...new production of Wagner’s “Tristan und Isolde,” scheduled for the fall of 2016, directed by Willy Decker, starring the soprano Nina Stemme and the tenor Gary Lehman, and conducted by Simon Rattle, who had a triumphant Met debut in Debussy’s “Pelléas et Mélisande” last season."

2016년에 메트에서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올릴 예정인데, 사이먼 래틀이 지휘로 니나 슈템메가 이졸데, 게리 레만이 트리스탄을 부를 예정이란다. 래틀도 대단한 지휘자지만 마이 러브 바그너리안 소프라노 슈템메가 이졸데를 부를 예정이라니 너무 기대가 된다. 나에겐 최고의 이졸데가 바로 슈템메이다. 그때까지 어찌 기다리지..수십번도 더 본 클립이 바로 슈템메가 부르는 "Mild und leise"이다. 오페라의 제일 마지막에서 여주인공이 죽어버린 트리스탄의 환영을 보며 연정의 환희에 사로잡혀 거의 미친 상태로 부르는 대단원의 모놀로그이다.



메트의 야침찬 이 새로운 프로덕션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과연 라이브로 볼 수 있을까? 2016년 쯤이면 공부도 거의 끝났을 시점이라 어디 취직해있으면서 학교에 마지막으로 논문 defense하러 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슬슬 논문주제 정할 시점이 다가오고있다. 스승님도 독일 오페라와 이탈리아 오페라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고 그러시고...그전엔 논문 관련해서 시험 주제도 정해야 하는데 역시 독일이냐 이탈리아냐 이게 관건이다. 여러모로 결단을 내려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까진 바그너를 중심으로 한 독일 오페라가 더 끌리지만 요즘 메트에서 봤던 베르디, 푸치니 작품들로 인해 이탈리아쪽도 호감도가 급상승 중이라 둘 중 하나를 택하기가 쉽지가 않다. 아무튼 뭘 선택하든 간에 나의 논문은 오페라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논문 마치고 운 좋게도 계속 뉴욕에 붙어있게 될지 아님 어느 다른 지역으로 자리잡아 가게 될지 모를 일이다. 허나 뉴욕을 떠나게 되면 가장 아쉬운 일이 메트 오페라를 실황으로 못보게된다는 것인데, 이는 생각만 해도 우울해진다. 나의 뉴욕생활에 있어 학교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트리스탄 코드 관련 동영상으로 예전에 봤었던 BBC의 바그너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영국의 유명한 코메디언인 스테판 프라이(유태인이다)가 진행자로 나선 프로그램이다. 아래 클립은 그 중 트리스탄 코드에 대한 설명부분이다. 간절한 그리움과 연정을 담은 동경을 표현하는 트리스탄 코드를 바이로이트의 바그너의 생가인 Villa Wahnfried의 피아노로 직접 쳐주면서 얘기하는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2006년도 봄, 햇살 좋을 때 바이로이트 찾아갔던 생각도 나고...

피아노는 스타인웨이인데 1876년 바이로이트 축제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스타인웨이 회사에서 선물한 것이다. 물론 바그너가 저 피아노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한 것은 아니다. 오페라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1857-59년에 작곡되었고, 1865년 현재의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 극장(이 곳 역시 늘상 드나들던 곳이라 생각만 해도 그립다)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피아노는 뉴욕산으로 찍혀있는 것 같은데 지금 사는 동네가 예전에 스타인웨이 피아노 미국 지점이 있던 곳이라 도로 이름도 "스타인웨이"이다. 혹시 거의 150년전에 우리 동네에서 만들어서 대서양을 건너 바이로이트까지 배로 실어간 것일까? 궁금하다...



*바그너는 악보의 첫 부분에 "langsam und schmachtend"라고 표기하였다. 이는 "slow and languid"라고 영어판에 병기되어있는데, 독일어 네이티브이신 샤흐터 선생님께서 "languid"란 단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하셨다. 즉, "schmachtend"는 단순히 나른하고 힘없는 것이 아니라, 연정에 사무친 그리움땜에 바짝바짝 말라가고 죽어가는 의미라 하셨다. 

Wednesday, March 28, 2012

바그너의 반지 사이클-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담주까지 내야할 에세이의 주제가 바그너의 "발퀴레" 3막중 보탄과 브륀힐데의 긴 대화장면인지라 숙제할겸 메트에서 했던 실황 녹음 클립을 보는 중이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고 지그문트의 편에 선 브륀힐데에게 너무나도 화가난 보탄...그러나 실제로는 보탄을 마음을 꿰뚫어 봤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던 브륀힐데 사이의 긴 대화를 보고 있자나 극 중 이미 죽어버린 지그문트도 생각나고, 지그문트 죽고 혼자남은 지글린데도 생각나고, 또 무엇보다 이 커플의 초월적 사랑에 감동받아 결국은 아버지 신의 뜻과는 반대로 지그문트를 살리고자 했던 브륀힐데의 따뜻한 마음도 감동적이고, 그런딸에게 어쩔 수 없이 벌을 내려야하는 보탄도 너무 안타까워 결국에는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꺼이꺼이 울다가 잠시 중단하고 페이스북을 들어갔더니 메트에서 5월부터 반지 사이클 전편을 제작 다큐멘터리 필름과 함께 극장 상연할 것이라는 공지가 떡하니 떠있었다.

이미 극장에서도 보았고 조만간 메트에 라이브로도 전부 볼 예정인 작품이지만 볼때마다 새롭고 재밌고 감동적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 볼 생각이다. 다만 수업있는 날이랑 겹치는 날이 있는지라...이건 수업 빠지고 갈지 고민 중...

아무튼 메트에서 이렇게 반지 사이클 전편을 극장에서 다시 보여주기로 하다니 정말 성은이 망극하다. 자세한 기사는 다음을 클릭.

http://www.metoperafamily.org/metopera/news/press/detail.aspx?id=21980

Saturday, March 24, 2012

레이디 맥베스에 대한 베르디의 코멘트

저번 수업시간의 주제는 베르디의 "리골레토"(Rigoletto)였지만 스승님께서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맥베스"(Macbeth)에 대한 자료를 나눠주시고 극 중 유명한 몽유병아리아("Una macchia e qui tuttora"-남편과 함께 왕을 죽인 레이디 맥베스가 죄책감에 미쳐버린 후 부르는 노래)도 칼라스의 노래로 들려주셨다. 안그래도 지난주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맥베스 보고난 이후 너무너무 좋은 나머지 유툽 검색해서 몽유병 아리아를 여러 가수들 버젼으로 줄창 듣고 있는 중이었는데 스승님께서 어찌 아셨는지,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나눠주신 자료 중, 레이디 맥베스에 대한 베르디의 코멘트가 있었다. 1848년 11월 23일날 파리에 머물던 베르디가 살바토레 카마라노(Salvatore Cammarano)에게 보낸 편지이다. 카마라노는 "레냐노의 전쟁"(La battaglia di Legnano)에서 같이 작업했던 대본가인데 당시 나폴리에서 "맥베스"를 한창 무대 올리려는 중이었다 (맥베스의 초연은 1847년 피렌체에서 이루어졌다). 이 편지를 보면 베르디가 원했던 레이디 맥베스의 목소리는 어떤 음색이며 전반적인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한가를 이해할 수 있다. 베르디가 말하는 레이디 맥베스의 캐릭터는 청아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섬세한 목소리랑은 상반되는 어둡고, 무겁고, 거친 악마적 이미지다.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리골레토"의 질다, "에르나니"의 엘비라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맥베스"에 나오는 음침한 마녀들을 훌쩍 뛰어넘는 사악한 포스와 강렬한 기가 느껴지는 그런 캐릭터로서의 레이디 맥베스를 베르디는 원했던 것이다. 다음은 베르디의 편지인데 여기서 타돌리니는 당시 잘나가던 소프라노 가수이다. 베르디의 말로 추측해보건데, 타돌리니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전형적인 리릭 소프라노였던 듯 하다.

현재 “맥베스” 리허설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어느 오페라보다 이 작품에 관심이 많은지라 몇마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타돌리니가 레이디 맥베스를 부를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녀가 이 역을 맡아야 한다고 했을 때 [사실]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타돌리니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 지 아실 것입니다. 그녀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 저는 다음을 말씀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돌리니의 음색은 이 역을 부르기엔 너무 섬세합니다. 이 얘긴 당신께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릴수도 있습니다. [물론] 타돌리니는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허나 저의 레이디 맥베스는 거칠고 사악한 [인물]입니다. 타돌리니가 노래부르는 것은 완벽합니다. 허나 저는 레이디 맥베스가 노래하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습니다.* 타돌리니는 깨끗하고, 유연하고, 강렬한, 환상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레이디 맥베스의 목소리는 독하고, 텁텁하고, 어두운 [음색이였으면] 합니다. 타돌리니의 목소리는 천사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레이디 맥베스가 악마같은 목소리였으면 합니다 […]


*역주: 레이디 맥베스의 노래 라인은 서정적이고 마냥 예쁘기만 한 전형적인 아리아와는 차별되기에 베르디가 "노래부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베르디의 레이디 맥베스에 대한 이토록 분명한 인물설정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나폴리 연주에서는 타돌리니가 그 역을 맡게된다. 베르디가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두개의 곡 중 하나로 간주했던 몽유병 아리아(다른 하나는 레이디 맥베스와 맥베스의 듀엣)를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부른다면 정말 몰입이 안 될 것 같긴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권력에 대한 욕망, 살인도 서슴치 않을 정도의 대범함, 결국은 죄책감으로 광기에 휩쌓인 모습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강하고 거칠고 차가운 열정의 목소리가 요구된다.

유툽 클립중 고르고 고른 것은 바로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녹음이다. 아주 강렬한 음색을 바탕으로 연기의 혼이 잘 전달되는 듯. 루트비히의 녹음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high Db음이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루트비히가 원래 메조 소프라노다 보니 고음을 내는 것이 버거웠을 것이라 쉽게 추측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음은 사실 소프라노라도 제대로 부르기가 쉽지가 않다. 베르디는 악보에 pppp를 표기하였는데, 극단적인 작은 음량으로 고음을 내는 것은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 두번 본 메트 오페라 공연에서 레이디 맥베스를 맡았던 나디아 미하엘도 두번 다 이 고음 엔딩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였다. 

*몽유병 장면의 가사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텍스트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Sunday, March 11, 2012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메트로폴리탄 오페라

1. 희극 오페라-몰입의 어려움

오페라의 내용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비극적인 "오페라 세리아"와 희극적인 내용의 "오페라 부파"인데, 후자는 대부분 결혼에 관한 것이며 전자는 삼각관계 또는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하다 결국은 죽음을 맞는 연인들에 관한 것이다. 평소 즐기며 익숙한 장르가 아무래도 비극 오페라라서 그런지, 아니면 시공간이 맞지 않는 유머코드가 어색해서인지, 이상하게 희극오페라는 나랑 맞지 않는다. 오페라를 보러가면 전날 밤 아무리 서너시간밖에 못잤다할지라도 왠만하면 졸지 않는데(특히 라이브 공연일소록), 이때까지 유일하게 완전 잔 적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영화관에서 봤을때이다. 도저히 공감가지 않는 스토리에, 유치찬란한 무대에, 음악도 그저그렇고...이상하게 몰입이 안되더니 급기야는 완전 자버렸다. 중간에 일어나서도 집중해서 볼려고 노력했으나 거듭 그냥 수면으로 몰입-_-;; 따지고보면 "마술피리"는 부파 오페라가 아닌 "징슈필"(Singspiel)이고 나름 자유주의 사상등의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명작이다. 또한 동화적 내용과 판타지로 인해 크리스마스즈음해서 어린이들에게 많이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술적, 도덕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결코 합이 맞지 않았던 "마술피리"....앞으로 이 작품을 분석하고 공부는 할지언정, 라이브로 보러갈 일은 없을 듯 하다.

완전히 자지는 않았지만 졸리거나 졸릴뻔했던 다른 작품으로는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있다. 가히 오페라 부파계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지난달에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디아나 담라우의 주연으로 봤었다. 아무래도 실제 라이브 공연이기때문에 "마술피리"때처럼 완전히 수면으로 빠지진 않았으나 보면서 좀 지루했던 것은 사실이다. 부파에서 항상 등장하는 편지 조작 에피소드를 비롯해 다른사람들 웃을때 난 도저히 안웃기는 장면들 등등..롯시니의 기악적이고 기교적인 선율을 듣는 것과 디아나 담라우의 타고난 연기력과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듣는 건 좋았으나 전반적인 오페라의 스토리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그래" 등도 보면서 상당히 지루함을 느끼는 오페라 부파들이라 수면의 위험성이 곳곳에 산재한다.

2. 도니제티의 유머코드-유일하게 몰입이 되는 희극 오페라

이처럼 전반적으로 희극 오페라와 거리가 먼 나이지만 유일하게 희극 오페라치고 몰입이 되는 작곡가가 도니제티이다. 사실 도니제티는 벨칸토의 정수라고 할만한 "루치아"(Lucia di Lammermoor)의 작곡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점에 있어선 역시 벨칸토 비극에서 한가닥 하는 벨리니("노르마"의 작곡가)와 쌍벽을 이룬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벨칸토의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도니제티만의 특징으로는, 그는 벨리니와 달리 부파 장르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L'elisir d'amore"(사랑의 묘약), "Don Pasquale," "La fille du Regiment"(연대의 딸, 불어 오페라) 등  그의 대표적인 희극 오페라들은 19세기 부파 중 최고의 명성과 인기를 자랑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봤던 "연대의 딸"(니노 마차이제, 로렌스 브라운리 주연)을 비롯해 3월9일날 봤던 "사랑의 묘약"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코믹 오페라라도 도니제티의 작품은 확실히 나와 합이 맞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3. "사랑의 묘약"-메트로폴리탄 오페라

Conductor: Donato Renzetti
Adina: Diana Damrau
Nemorino: Juan Diego Flórez
Belcore: Mariusz Kwiecien
Dulcamara: Alessandro Corbelli

이날 공연은 실로 드림팀, stellar cast의 전형이라 할만큼 최고의 가수진이었다. 디아나 담라우가 아디나를, 플로레스가 네모리노를, 퀴비쳰이 벨코레를 불렀으니 이 이상의 더 좋은 가수진을 찾기 힘들다 할 정도로 드림팀이었다. 아디나, 네모리노의 벨칸토 테크닉은 완벽했으며 벨코레의 군인 연기도 인물에 딱 들어맞았으며 돌팔이 약장수 둘카라마 또한 극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이 오페라는 실제론 평범한 보르도 와인에 불과한 것을 사랑의 묘약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아디나를 사모하던 네모리노는 결국 이 가짜약이 진짜인줄 알고 마시지만 어찌어찌하여 결국은 거짓말처럼 이 둘의 사랑이 이뤄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똑같이 사랑의 묘약으로 부터 일이 전개되나 결국은 연인의 비극적 죽음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 바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이다. 묘약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공유하다보니 이 오페라 중간에도 아디나가 트리스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나오는 음악은 바그너랑은 전혀 상관이 없다(바그너의 "트리스탄"은 "사랑의묘약"보다 훨씬 뒤에 작곡되었다).

*아디나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책을 읽어주는 장면. 사랑의 묘약덕에 트리스탄은 이졸데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데...이는 차후 일어날 아디나와 네모리노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처절한 사랑에 고통받고 결국은 죽음까지 이르게 되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는 전적으로 대조되는 결말이다. 클립에서 아디나는 안나 네트렙코, 네모리노는 롤란드 비야존. 

전날 새벽에 각종 일처리 한다고 한 다섯시간밖에 못잤지만 오페라를 보는내내 전혀 졸리거나 지루하지 않았으며, 희극 오페라임에도 몰입하며 보았다. 그 이유로는 우선 담라우와 플로레스의 탁월한 가창력과 연기력에 힙입은 바가 크다. 플로레스는 가짜약인 포도주를 마시고 술취한 연기를 너무 웃기고도 적나라하게 해주었다. 특히 술이 취한 채 횡설수설 비틀거리며 헤롱헤롱하는 연기를 비롯해 요즘 유행하는 각종 댄스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정말 즐겁게 해주었다. 담라우 또한 무대를 갖고노는 흥이 대단한 가수인데, 이날 찰떡호흡 플로레스를 만나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끼가 발산된 듯 하였다.

중간 중간 웃긴 장면들에선 관객들이 다같이 웃었고, 종이위에 파스텔이나 크레용으로 대충 그려 만든 듯한 허접한 무대 또한 어설프기 보단 귀엽게 느껴졌으며, 각 캐릭터들은 사이의 오해와 밀고당기기는 유치하다기 보단 사랑스러울 정도였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이 약 한번 먹어봐, 신경통, 관절염, 위궤양, 두통, 치통, 상처 곪은거 전부 다 들어~~"라고 외치던 약장수 또한 허세스럽고 사기꾼이라기 보다는 넉살좋은 통닭집 아저씨의 포스였다.

알고보니 이번 시즌을 끝으로 허접스럽지만 귀여웠던 그 무대는 사라지고, 다음시즌에는 다소 현대적인 연출의 "사랑의 묘약"이 올려질 예정이란다. 모던한 배경의 "사랑의 묘약"은 어떻게 펼쳐질 지 기대가 된다. 

Saturday, March 10, 2012

소프라노 Nina Stemme

뉴욕에 온다면 장소, 시간, 레퍼토리 불문 달려가고 싶은 성악가 세 명 중 한사람인 니나 슈템메의 인터뷰 클립. 나에게 있어 바그너의 "트리스탄"에 관한 최고의 음반이 바로 슈템메, 도밍고, 르네 파페 및 파파노가 함께 한 EMI 음반이다. 가히 최고의 이졸데, 최고의 트리스탄, 최고의 마르케왕이 모인 드림팀이라 할 수 있다.

슈템메는 현재 손꼽히는 바그너 가수지만 처음에는 목소리가 비교적 가볍다 할 수 있는 모차르트로 역할로 시작했단다 (예: "마술피리"의 파미나). 그러면서 서서히 헤비한 음역으로 나아갔다고 하는데, 비슷한 내용을 예전에 카우프만 또한 인터뷰에서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바그너 역할들이 무겁고 강한 음색을 요하다보니, 20대나 30대 초반부터 막 불러서는 목이 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정도 발성 기교가 자리를 잡고 안정된 다음에야 바그너에 도전하는 경향이 있다.

*니나 슈템메와 르네 파페. 바그너 "발퀴레" 중 3막에서 브륀힐데와 보탄의 긴 대화 장면이다. 

인상적인건, 인터뷰 말미에 슈템메는 여태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 성악가는 아니지만 "좋은 귀"를 가진 코치(보통 피아니스트들이다)들의 도움이 컸다는 점, 그리고 노래하는 테크닉은 개인별로 다 다르기에 일괄적인 적용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코멘트들이다. 성악은 기악과는 달리 몸 전체가 악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특이한게, 발성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똑같은 사람에게서 어둡고 무거운 소리가 나올 수도, 맑고 가벼운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노래할 때 목소리와 평상시 말할 때 목소리가 완전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게오르규, 카우프만이다. 이 사람들은 무대위에서 목소리와 인터뷰때 목소리가 너무 다르기때문에, 노래만 듣다 인터뷰 하는 걸 들으면 정말 동일 인물 맞나 싶을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Sunday, March 4, 2012

"Ring without Words"- 카네기 홀

Carnegie Hall Live: Vienna Philharmonic Performs the Ring Without Words - WQXR

이번 시즌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2월말 뉴욕을 방문한 베를린 필의 여러날 연주회 중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포함된 연주회, 그리고 어제 카네기홀에서 열린 링 사이클을 콘서트 버젼 연주회를 놓친 것이다. 예매를 미루다가 결국은 다 지나가버렸다 흑흑..다행이 WQXR에서 페이스북으로 녹음 클립이 있다는 공지를 올려주는 바람에 너무나도 감사하게 듣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메트에서 베르디의 "아이다" 실황을 생중계해주기도 했는데, 캐스트가 바껴서인지 얼마전에 봤던 공연에 비해 훨씬 좋게 들렸다. 아무튼 이리저리 클래식 애호가 및 전공자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WQXR이 참으로 고맙다.

Saturday, February 25, 2012

베르디 “Aida”-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베르디 “Aida”-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초연: 1871,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

대본: Antonio Ghislanzoni

지휘: Marco Armiliato

람피스: James Morris

라다메스: Marcelo Alvarez

암네리스: Stephanie Blythe

아이다: Violeta Urmana

프러덕션: Sonja Frisell

무대 디자인: Gianni Quaranta (영화 “전망 좋은 방” 미술 감독)

2월 16일날 학교에서 수업 마친 후 메트 오페라에 아이다를 보러갔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개선행진곡에 진짜 코끼리와 말이 등장하며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준다고 하는지라 내심 기대가되었다. 대규모의 합창 장면, 개선행진 시 들어왔다 나가는 긴 행렬들, 거대한 신전,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거대한 돌무덤 등 베르디의 오페라 중 이와같은 압도적인 무대가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작품이 바로 “아이다”이다. 바로 이런점 때문에 베로나의 콜로세움같은 거대한 야외극장은 아이다 공연을 위한 비쥬얼적으로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역시나…화려한 스펙터클 하면 세계 어느 오페라 하우스를 압도하고도 남을 메트답게(그만큼 다른 극장에 비해 예산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 정말 화려하긴 했다. 기대했던 코끼리는 안나왔지만 말은 제법 나왔다. 헌데 연주도중 말이 자꾸 화난 듯이 앞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오케스트라로 뛰어든다거나 가수들을 공격한다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조마조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무대에서 심통부리는 듯한 말을 보니 차라리 코끼리가 빠진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을 등장시키는 장면이 나쁘진 않지만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동물 특유의 야성적 본능을 누르게끔 한다는 점-말도 비록 인간적으로 윤리적으로 다뤄진다 할지라도-이 그리 달갑게 보이지는 않는지라, 코끼리가 안나오는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무대 연출은 영화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의 미술을 담당했던 지아니 콰란타인데, 평소 메트 오페라의 전반적인 경향에 걸맞게 상당히 고전적이고 그래서 시각적으로 편안하고도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굳이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실제 의상과 자연 환경이라기 보다는 그 나라들을 생각했을때 우리가 떠올리는 "분위기" 및 "상상된 이미지"에 부합하는 무대였다.

베르디가 오텔로를 작곡한 후 카이로 오페라 극장 개관을 기념해 위촉 받은 작품인만큼 베르디 특유의 후기 음악적 어법이 곳곳에 드러난다. 초기 오페라에서 보이는 쿵짝짝 리듬 및 섹션별로 명확하기 나눠지는 것이 사라지며 장면들이 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이 명확한 종지점과 구분을 피한채 끝없이 이어지는 바그너의 음악적 방향으로 베르디 또한 따라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Art of Transition”).

성악가들에 대해 말하자면, 이날 공연은 “아이다”가 아니라 “암네리스”였다. 스테파니 블라이트의 압도적으로 큰 성량이 나머지 모든 성악가들을 다 죽여버렸다 할 정도로 노래 실력 및 무대 존재감에 있서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암네리스가 사랑하는 라다메스를 맡은 알바레즈의 노래는 평소에 비해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해였다. 너무 막강한 암네리스를 만나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등장해서 처음 부르는 entrance aria라 할수있는 “Celeste Aida”에서도 연인을 향한 애틋하고 다정한 느낌 보단 불안하고 뭔가 찌질해보일 정도였다. 다소 비실비실했던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맡은 비올레타 우르마나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우르마나는 전반적으로는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시원한 가창을 들려주진 않았다. 에티오피아 공주인 아이다는 적국인 이집트에 인질로 잡혀와서는 그곳의 장군인 라다메스와 사랑에 빠지는, 조국과 연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번민하는 역할이다(이 점에 있어 자신의 가문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공주의 남자”의 세령이와 상당히 비슷한 처지다). 그런 마음의 아픔 및 갈등이 노래 전반적으로 느껴져야는데, 암네리스의 무지막지한 “미친 존재감”이 아이다를 그만 가려버렸는지 절절함이 호소력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실 "아이다"는 이 세 인물의 사이에 흐르는 긴장 관계 및 심리전이 극을 이끌어간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페라의 주된 스토리 축인 삼각 관계를 이루는 아이다, 라다메스, 암네리스 사이에 팽팽한 실이 당겨진 듯한 긴장감이 시종일관 감지되어야 한다. 즉,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사회적으로 서로 허락되지 않은 관계이기에 그들의 사랑을 항상 숨겨야 하며, 혹시나 들킬까하는 조마조마함이 늘상 뒤따른다. 아이다와 암네리스는 서로 연적 관계인데, 둘이 같이 있을 때면은 암네리스는 질투심과 복수의 감정, 아이다는 불편함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낀다. 암네리스와 라다메스는 후자의 전자에 대한 일방적 집착과 사랑이 급기야는 애증으로 변하게 된다. 허나, 암네리스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한 나머지, 세 인물 사이의 이러한 드라마적 긴장의 밸런스가 깨져버렸고 따라서 암네리스가 왜저리 자기보다 못해보이는 남자에게 집착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기회가 있다가 카우프만의 강렬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라다메스 장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이날 블라이트를 제외한 성악가들에게서 뚜렷한 느낌을 받지 못했던 반면, 감동적이었던 것은 오히려 베르디의 음악과 드라마였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에서 “아이다”를 본 기억이 있긴 하지만 그때 베르디의 음악이 특별히 감동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메트의 라이브 공연에서 오래간만에 들어본 아이다 음악은 정말 완전 다르게 다가왔다. 초기 작품에 비해 훨씬 박진감있고 세련되고 깊이있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단순히 오케스트라 반주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는 들리는 관악기 또는 하프의 효과적인 사용, 앞서 말한 “Art of Transition”의 면모, 듀엣과 앙상블에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몰아가는 긴장감은 가히 베르디의 음악적 어법의 완성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라다메스, 아이다, 암네리스 누구하나 단편적인 1차원적 캐릭터가 아니라 조국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름대로 복잡한 심리를 가진 인물들이다 (이점에 있어, 같은 후기 작품으로 분류되는 “오텔로”나 “돈 카를로”또한 비슷하다). 그러한 갈등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아이다며, 이후 라다메스 또한 같이 도망가자는 아이다의 간청에 정말 조국을 떠날 것인지 갈등하게 된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 표독하던 암네리스 또한 라다메스를 죽이기로 한 판결을 후회하며 혹시 다시 뒤집을 수 없을까 하며 고뇌하는 장면이 나온다.

평소에 무덤덤하게 생각했던 “아이다”가 이번 메트 실황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조만간 프레니(아이다)/발차(암네리스)/카레라스(라다메스)/카라얀(지휘) 음반을 주문해서 듣고 또 들어야겠다.


*예전에 분석시간에 마크 선생님이 과제로 내어주셨던, 라다메스와 암네리스의 듀엣. 조국과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이다는 전쟁 포로로 잡혀온 자신의 아버지인 아모나스로 왕에게, 라다메스를 통해 알아낸 군사기밀을 말해버리는데 이를 암네리스가 목격한다.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결국 잡히고, 여전히 라다메스에 대한 연정을 끊지 못한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에게 아이다를 버리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지만 라다메스는 단호히 거절한다. 동영상은 암네리스가 라다메스를 회유하지만 라다메스가 거부하고, 이에 암네리스가 격분하는 바로 그장면이다.

이 유툽 클립은 당시 숙제하기 위해 찾아본 것중 가장 좋았던 것으로, 빈 국립 오페라의 반주로 도밍고와 아그네스 발차가 노래하는 연주이다. 동영상에서 발차는 이미 전성기를 훨씬 넘어선 나이의 할머니로서 고음에선 팔세토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연인을 위협함과 동시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갈구하는 나약한 암네리스의 모습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그려낸다. 연주에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와 완벽한 표현은 목소리의 쇠퇴를 잠재우고도 남는다.



Tuesday, February 14, 2012

벨리니의 "Norma" 중 "Casta diva" (순결한 여신), 그리고 영화 "The Iron Lady"(철의 여인)

어제 보고 온 영화 "The Iron Lady"에 "Casta diva"(순결한 여신)이 나왔다.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 반가웠음과 동시에, 영화의 컨텍스트 내에서 이 아리아가 어떤 메타포를 가지는 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페라 중 이노래는 드루이드교를 이끄는 여자 사제인 노르마가 신성한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등장하며 부르는 아리아(entrance aria, 보통 "cavatina"라고 한다)이다.

영화에서 "Casta diva"는 두 번 나온다. 한번은 대처 총리가 젊은 시절 남편이랑 데이트 하면서 보던 오페라가 벨리니의 "Norma"였다. 실제 오페라 무대 모습은 안나오고(당연히 런던의 코벤트 가든일 것이라는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커플이 관객석에 앉아 미소 지으며 좋은 시간을 가지는 장면에 이 아리아가 OST로 들린다. 두번째는 대처 총리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심정으로 총리직을 사임하며 다우닝가 10번지의 자택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에서 또한번 이 노래가 나온다. 그 많은 오페라 중 왜 하필 "노르마"를 선택했을까? 단순히 이 아리아가 듣기에 좋고 유명하다는 점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가사를 보자면,

순결한 여신이시여, 그대의 은빛이
신성하고도 오래된 나무들을 비추는 것처럼
그대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려짐 없이 우리에게 드러내 주옵소서.
여신이시여
그대의 불타는 영혼을 가라앉히소서.
또한 그대의 대담한 정열을 진정시키소서.
그대가 하늘에서 지배하는
땅에 평화를 전해주시옵소서.

Casta Diva, che inargenti
queste sacre antiche piante,
a noi volgi il bel sembiante
senza nube e senza vel...
Tempra, o Diva,
tempra tu de’ cori ardenti
tempra ancora lo zelo audace,
spargi in terra quella pace che regnar tu fai nel ciel...

이는 노르마가 하늘에 기도하는 전형적인 "기도" 아리아이다. 노르마의 사제라는 위치, 따라서 신성함과 권위가 전면에 드러나는 장면이며 오페라를 통틀어 노르마를 가장 숭고하고 우아하게 조명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밝혀질 노르마의 숨겨진 사실들 (법을 어기고 비밀 결혼 및 아이들까지 두고있음. 게다가 남편은 적국의 장군)을 생각해볼 때 참으로 아이러니한 아리아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아리아가 불려지는 순간, 노르마는 이 세상을 초월해보일 정도로 가장 신성하고 숭고한 여신이 된다. 진정으로, 노르마에 의해 불려지는 노르마를 위한 아리아이다. 영화는 이 아리아를 택함으로서 오페라 캐릭터로서의 노르마가 영화속의 대처라는 인물에도 투영되어 보이게끔 한다. 영화의 컨텍스트와 노르마의 컨텍스트를 생각해본다면,

1. 노르마는 드루이드교를 이끄는 지도자이다. 최고의 여사제장이며 로마의 탄압에 대항해 부족의 결속과 단결을 책임지며 권위와 카리스마로 이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 대처의 "총리"로서의 역할과 통하는 부분이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극중 노르마는 은근히 연정에 많이 휘둘리는 인물이다. 드루이드족들이 얼른 로마를 치자고 할 때 노르마는 폴리오네와 아이들 생각에 다른 이유를 들어 아직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폴리오네를 죽일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쌓인 정 및 아이들 때문에 행하지 못한다. 그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또한 죽여버리려고 시도했지만 (이렇게 되면 "노르마"가 아닌 "메데아"가 된다) 차마 실천하진 못한다. 이에 반해 대처는 영화에서 훨씬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자식이나 남편보다는 정치가 언제나 우선 순위이며 이에 대해 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2. 노르마는 그러나 정치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로마의 장군인 폴리오네와 내연관계를 이루어 두 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노르마가 사제직을 수행하거나(사제는 결혼금지) 철전지 원수의 나라인 로마에 대항하는데 명백한 걸림돌이자 오점이다. 노르마가 자신을 배신한 폴리오네를 죽이려 칼을 들이대는 순간에도(이는 자신의 순정을 농락한 배신자를 처벌하는 의미 외에 적국의 장군을 죽인다는 애국적인 행위라는 두가지 명분을 가진다), 마지막에 자신의 죄를 만천하에 밝히고서 화형장작 위로 스스로 오르려는 순간에도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바로 이 아이들이다. 즉, 끝내 아이들의 아빠라는 점 때문에 폴리오네를 찌르지 못하며, 장작에 오르기 전 자신의 아버지인 오로베소에게 제발 아이들은 죽이지 말고 잘 돌봐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이 마지막 장면에선 안 울수가 없다ㅠㅠ).

이는 겉보기에 위엄과 권위로 다가오는 지도자라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있는 한 어머니이자 아내로서의 역할을 벗어날 수 없었음을 오페라의 컨텍스트를 빌려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지. 영화에서도 대처가 매달리는 아이들을 무시한 채 매몰차게 떠나는 장면, 딸이 운전면허 딴 것을 자랑할 때 같이 공감하며 좋아하는 모습이 그리 드러나지 않는 점(국가적 대사에 비해서는 너무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의 환영이 나타나 대처에게 당신이 정치하느라 나와 아이들은 항상 뒷전이었다고 소리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는 모두 국가의 지도자 vs 가족(아내이자 어머니)이라는 대결구도로 볼 수 있는 역할 갈등들이다.

3. 오페라의 엔딩에서 결국은 폴리오네와의 관계를 고백한 노르마는 명예로운 퇴장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적국의 장군과 내통한 배신자이자 아이들에게 불명예스러운 어머니로 남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어 속죄의 마음을 제대로 보이겠다는 결정이다. 대처 총리의 경우 영국병을 치유하는 와중에 부딪혔던 엄청난 반발이 축적되며 보수당에 대한 반감이 커가던 와중, 결국은 대외적인 분위기를 받아들여 사임을 결정한다. 굳이 선거에 나가 패배자라는 오명을 얻느니 여태까지 쌓아온 업적(영국병 치유, 냉전 종결, 아르헨티나 및 포클랜드 문제의 성공적 처리)을 바탕으로 영국의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강철같은 카리스마의 리더쉽을 보여준 성공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길 선택한 대처 총리. 물론 노르마와 같은 극단적인 결말은 아니라 할지라도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며 명예롭게 퇴장한다는 점에선 두 사람이 닮아있다.

오페라 속 캐릭터로서의 노르마는 지도자, 아내, 엄마라는 다양한 역할을 가지며 이는 끊임없이 갈등 관계를 만들어낸다. 대처 총리의 위차나 역할도 노르마가 처한 입장 및 상황과 완전 일치하진 않지만 겹치는 부분이 어느정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리아는 영화 속에서 적절한 음악적 메타포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Casta diva"에 대해 다시 유툽 클립들을 찾아보았다. 영화에서는 칼라스 목소리가 나왔던 것 추측하는데, 나의 best choice는 카바예, 플레밍, 게오르규 등이다. 칼라스도 나쁘진 않으나 목소리가 신성한 여신이라하기엔 너무 "인간적"이다. 그중 특히 긴 호흡과 레가토 선율, 서정적 표현력, 그리고 깨끗한 음색이 특징인 카바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명연주이다. 이 이상 더 완벽한 연주를 찾긴 힘들다 할 정도로 호흡 테크닉 및 긴 프레이징이 압도적이다. 1974년 프랑스 오랑쥬 페스티벌 실황인데 당시 야외공연 때 불던 바람으로 인해 휘날리는 옷자락은 오히려 더 멋있는 분위기를 내는 것 같다. 말그대로 벨칸토의 여신이 부르는 여신 아리아이다.

Saturday, February 11, 2012

예매의 중요성 및 "꺼진불도 다시보자" 교훈

오늘 그동안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던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 생중계를 보러 타임 스퀘어의 극장에 갔으나 예상을 뒤엎고 매진. 극장에서 해주는 오페라 보러갔다가 매진된 적은 처음이다. 장장 6시간 반이라는, 다른 오페라에 비해 적어도 두배가 넘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매진이라니..정말 놀랍다. 혹시나 해서 유니온 스퀘어의 극장에도 가봤으나 거기도 매진.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와서 여태까지 찍어두었던 공연들 다시 찾아 다 예매하는 중이다.

5월달에 "신들의 황혼"을 메트에서 라이브로 볼 예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극장의 와이드 스크린으로 보면서 미리 꼼꼼하게 미리 예습하려는 계획은 아쉽게도 물거품이 되버렸다. 나중에 DVD가 나오면 닳을때까지 돌려봐야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메트에서 배달되어 온 "반지" 사이클의 티켓들을 다시 확인해보았는데, 달력에 적어둔 날짜와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 예매할 때 second choice로 선택했던 패키지가 당첨되었는데 여태까지 first choice 가 당첨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1년동안 학수고대한 공연을 거금주고 예매해놓고 완전 놓칠뻔 하였다. 예매의 중요성 및 배달된 티켓날짜 다시 확인하기의 교훈을 확실히 얻었다.

오늘 예매한 공연 중 하나는 5월 18일 카네기홀에서 열릴 샤를 뒤뜨와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협연이다. 폴리닌 2008년도 가을에 열린 독주회 이후 처음인데, 올해 이번 협연 외에도 따로 독주회 일정이 잡혀있다. 더불어 라벨의 "다프니스 모음곡"(전곡) 또한 아주 기대중이다. 구불구불 아라베스크 리듬 및 섬세한 음색이 전면적으로 두드러지는 곡이다.

Performers
The Philadelphia Orchestra
Charles Dutoit, Chief Conductor
Maurizio Pollini, Piano
The Philadelphia Singers Chorale
David Hayes, Director

Program
GLINKA Overture to Ruslan and Ludmilla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RAVEL Daphnis et Chloé (complete)

다른 하나는 5월 24일날 역시 카네기홀에서 열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의 콘서트 연주이다. 최고의 바그너 가수 중 한명인 니나 슈템메가 살로메 역을 부를 예정이다. 힘있고 카리스마 있는 음색에 고귀함과 우아함까지 겸비한 목소리의 슈템메. 뉴욕에서 연주가 있다면 프로그램, 장소 불문하고 무조건 가서 보고 싶은 성악가 중 한명이다 (다른 두명은 카우프만과 에바-마리아 베스트브뢱).

폴리니와 더불어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키신의 5월 23일날 뉴욕필과 협연 또한 아직 예매는 안했지만 눈에 띄는 연주이다(학교에 돌아다니는 학생티켓이 아직 남아있으면 좋겠다). 그리그와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여태까지 키신은 한번도 라이브로 들은적이 없는데...평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정석의 연주를 들려주는 키신의 연주회도 많이 기대가 된다.



Friday, February 10, 2012

신간-"Quiet" by Susan Cain

Quiet by Susan Cain - Random House

뉴욕 타임즈에서 책 리뷰 섹션을 읽다가 발견한 책인데...미국같이 외향적, 진취적, 자신감 충만한 성향을 훨씬 가치 있게 평가하는 나라에서 이와같은 책이 나오다니 다소 놀랍다.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1. 무조건 외향적이라고 다 좋은게 아니다. 머리보단 입이 먼저 앞서가며, 알맹이 없이 쓸데없이 말만 많은 요란한 빈수레가 알고보면 얼마나 실속없는 빈껍데기인지, 2. 내성적 사람이라고 멍청하고 독창성도 결여되고 사회적 교감력이 떨어진다고 성급히 판단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성향의 사람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내공을 갖추고 있으며 자기 개발 및 창조적인 것에 힘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많고 자신감이 넘쳐 오히려 자만으로 보이는 사람이 조용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간주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 또는 미국의 주도적인 문화에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오페라 리뷰 읽으러 들어갔다 우연찮게 발견해서 읽게된 뉴욕타임즈 리뷰.
http://www.nytimes.com/2012/02/12/books/review/susan-cains-quiet-argues-for-the-power-of-introverts.html?pagewanted=2&ref=books

이 리뷰에 따르자면 책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이 두개인데, 첫번째는 "내향적"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너무 넓은 나머지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가치는 다 갖다 붙인거 같다는 것이다. 즉, 케인이 정의하는 내향적 성격의 사람은 다음의 특징들을 가진다.

"관조적이고, 지적이며, 책이나 학문을 좋아하며, 잘난척 하지 않으며, 예민하며, 사려깊으며, 섬세하며, 내성적이며, 내부 지향적이며, 부드럽고, 조용하고, 겸손하고, 고독을 지향하며, 부끄러움을 타며, 위험을 피하고자 하며, 민감하다"

“reflective, cerebral, bookish, unassuming, sensitive, thoughtful, serious, contemplative, subtle, introspective, inner-directed, gentle, calm, modest, solitude-seeking, shy, risk-averse, thin-skinned.”

리뷰어의 말대로 좋은말은 다 끌어다 모은 감이 없진 않으나,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내향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일면들을 정확하게 보고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은지. 사람의 성향이란게 단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내향적임"을 설명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저렇게 많은 단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더불어, 책에서 재평가를 하고자 하는 내향적 성향이란 단순히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고, 게으름에 가까운 무기력함과 혼동되어서는 안되는데, 그러기 위해선 "introvert"(내향적)이라는 단어가 미처 포함하지 못하는 긍정적 의미를 보완해 줄 다른 많은 단어들이 필요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새로 보자고 주장하는 내향적 성격이란 단순히 조용하다는 것을 넘어 지적인 능력, 사회적인 배려심, 인간에 대한 예의, 신중함과 같은 사고의 방법 및 행동의 양식에 까지 적용되기 때문이다.

리뷰어가 지적하는 두번째는 문제점은,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존심이 낮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특히 두번째 사항 관련해서 리뷰어는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 또는 비즈니스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내향적 사람들의 자존심이 낮을지도 모르나 실험실 또는 연구에 몰두하는 내향적 성향의 사람들은 오히려 만족할 정도의 높은 자존심 갖고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나 또한 이 두번째 비평에 상당히 공감한다. 아무래도 혼자 책읽고 실험하고 생각하며 논문 쓰기에 정진하는 학자들의 경우 자의든 타의든 내향적 삶을 살 가능성이 낮지 않은데, 이들의 일에 대한 만족감과 자존심은 결코 다른 직종에 비해 낮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개강하고 학교 수업과 강의로 너무 바쁜 나머지 지금은 도저히 읽을 시간이 없고 방학하고 아마존 킨들로 한번 봐야겠다.

Thursday, February 9, 2012

바그너의 "Götterdämmerung" 프리뷰-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지금 하고 있는 바그너의 오페라의 "반지" 시리즈 중 4번째 작품인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 공연이 이번 토요일, 미국 전역의 영화 극장에서 라이브 생중계로 방영될 예정이다. 여태까지 봐웠던 메트의 새로운 "반지" 시리즈 연출이 너무나도 맘에 들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는지라 이번 마지막 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예매해서 볼 예정인 메트의 "반지" 공연은 5월 초인데, 그때까지 트레일러 및 극장 상연이라도 열심히 보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메트 오페라에서 올린 트레일러. 이번 "반지" 시리즈 프로덕션의 대표적 상징 아이콘인 강철판자가 여전히 무대를 채우고 있다.  

이 오페라 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대목은 운명의 세 여신들(Norns)이 실을 꼬으다가 갑자기 실이 끊어지는 장면이 나오는 프롤로그 부분이다. "신들의 황혼"의 첫 시작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반지"의 원래 주인공이었던 보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각각 알토, 메조, 소프라노가 노래한다. 이 부분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1. 일단 바그너의 음악 자체가 너무나도 멋있고 (오프닝에서 관이 연주하는 Eb단화음에서 Cb장화음으로의 진행(bVI 또는 변형이론에서 Leittonwechsel transformation)은 세상의 무너짐이 조만간 일어날 것같은 불길하면서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2. 각각 다른 음역의 세 여성 성악가들이 만들어내는 다크 사운드의 하모니를 듣는 묘미도 좋고, 3.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뭔가 일이 터질것 같은 분위기가 지배하는 무대 위 긴장감과 스릴, 4. 작곡자이자 대본을 만든 바그너가 설정한 메타포적 의미, 즉 운명의 여신들이 보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실이 끊어지는 것을 보여줌으써 향후 그가 지배하는 신의 세계(발할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극적인 은유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맞물려 대단원을 향한 서막을 완벽하게 이루어낸다. 

아래는 예전에 이 프롤로그 부분을 다룬 논문을 읽으면서 찾아본 유툽 동영상 중 성악적으로 제일 좋았던 클립이다. 어두우면서 힘있는 음색의 저음 여성 목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 타입이기도 하다. 바그너의 오페라 중 찾아보면은 뛰어난 여성 앙상블을 담고 있는 장면이 많다. 운명의 여신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라인의 황금" 시작 및 "신들의 황혼" 3막에 나오는 라인 처녀들의 3중창, "발퀴레" 3막의 오프닝에서 8명의 발퀴레가 여전사의 카리스마와 포스를 내뿜으며 등장하는 장면, "신들의 황혼" 1막 3장에서 발트라우테가 반지를 버리라 설득하고 브륀힐데가 완강히 거부하는 듀엣 장면 등은 여성 목소리로 이루어진 앙상블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주옥같은 예들이다.  


*바이로이트 실황(카일베르트 지휘) 녹음 음반. "신들의 황혼" 첫 부분. 예전에 "Schenker and the Norns"라는 논문의 발표 준비를 하면서 유툽에서 검색했던 녹음 중 이 카일베르트 실황이 가장 좋았었다. 어두우면서 카리스마있는 세 목소리가 실어나르는 불길한 징조, 운명과 숙명, 멸망의 예언은 "라인의 황금" 및 "지그프리트" 중 에르다(대지의 여신)가 말했던 것들과 궁극적으로 의미가 상통한다.  




Friday, February 3, 2012

바그너의 "Rienzi"-Opera Orchestra New York

지난 일요일날 링컨센터의 Avery Fisher Hall에서 열린 바그너의 "리엔치"의 콘서트형식(Konzertante) 연주를 보고왔다.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인데다 거의 연주가 되지 않는 작품이기에 이렇게 콘서트 형식으로나마 무대에 올리는 기회는 아주 드문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후기의 "music drama"에서 보이는 음악적 완성도 및 대본의 효율성은 확실히 떨어졌다. 프랑스 Grande opera영향을 받아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음악 및 대규모 스펙터클의 추구는 바그너가 베버 이후 독일의 오페라적 전통의 계승자라기보다 마이어베어나 베를리오즈의 노선에 맞추고자 애쓰고 있었음을 증명하였다. 대본 또한 독일어에서 영어로의 번역 문제 때문인지 몰라도, 공산주의 전당대회에서 쓰일법한 선동구호로 점철되어 있었기에 딱히 감동적이고 가슴깊이 새길만한 라인이 발견되진 않았다. 바이로이트에서 왜 "리엔치"가 아직도 한번도 공연되지 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작품적인 약점에 반해, 연주자들 중 특히 주역인 메조 소프라노(Geraldine Chauvet)와 소프라노(Elizabete Matos)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리엔치가 자주 공연 안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메조 역을 제대로 불러낼 성악가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인물들에 비해 압도적인 긴 분량, 강렬한 표현과 음색, 서정성 등 성악가가 갖추어야 할 보든 기교와 힘, 감정적 표현이 막대하게 요구되는 역할이었는데 쇼베는 너무나도 이 역을 완벽히 소화, 관객들에서 집중적인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냈다. 보면서 든 생각이 이렇게 노래 잘하고 실력있는 가수가 왜 여태 메트에 서지 않은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날 최고의 발견은 바로 쇼베라 할 수 있다.

마토스는 재작년에 메트에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에서 봤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그리 기억할만한 인상을 받진 못했다. 허나 이번에 보니 워낙 성량도 크고 힘이 넘치는 지라 바그너 및 베르디나 푸치니의 강력한 여성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 워낙 화려하다보니 박스석에서 브라스 앙상블이 연주된다거나, 중간에 어린이 합창단 또는 남성 합창단이 청중석 뒤에서 입장한다거나 하는 시각적으로 주목을 끌만한 이벤트들이 작품 중간 중간에 있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바그너가 여전히 프랑스적 전통 아래 있는 시기이자 이탈리아 벨칸토의 흔적까지 간간이 보이는지라 이후 완숙한 바그너만의 독창적 어법에서 보이는 깊이와 진중성은 다소 결여된 것으로 보였다.


Friday, January 27, 2012

"공주의 남자", "해를품은 달", 그리고 베르디의 "운명의 힘"

"공주의 남자"에 이어 "해를품은 달"을 열심히 보는 중이다. 전자는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큰 틀에 어느정도 기반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전적으로 허구이다. 하지만 두 작품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무슨 수를 써도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의 끈, 즉 만날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게 되어있다는 운명을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인위적인 힘(무력이나 간계)으로 잠시나마 억지로 떼어놓을 수는 있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 이는 만나게 되어있는 운명을 거스르진 못한다. 아무리 집안의 원수가 되어 죽이니 살리니 해도, 승유와 세령은 죽음까지 불사하며(실제 마지막에 가서 이들은 그들을 옳아매던 "이름"을 잃고서 진정히 함께하는 삶을 얻게 된다. 즉 이름의 부재를 택함으로써 실제 존재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결국은 부부가 된다. 아직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해를품은 달에서는 현재 인위적인 힘에 의해 이훤과 연우의 끈이 (겉보기에) 끊어져 있지만 궁극에는 그 끈이 이어지게 된다고 한다.

이걸 보니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이 생각난다. 베르디의 수많은 오페라 제목 중 가장 철학적이며 멋있다고 생각하는 "운명의 힘"은 위의 두 드라마와는 반대로 헤어져야만 하는 사람은 아무리 이어놓으려 해도 같이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역시 드라마에서와 비슷하게 집안의 반대에 당면한 두 남녀(레오노라와 돈 알바로)가 같이 도망친다. 그러나 함께한 시간도 잠시, 이내 헤어지며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만날 듯, 만날 듯 안타깝게 스쳐지나가는 순간이 계속되며 집안의 화해가 이루질 것 같은 희망도 던져주지만 결국엔 레오노라는 가문과 대의명분에 사로잡힌 오빠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돈 알바로 또한 뒤따라 죽는 것으로 암시된다 (오페라의 결말은 판본에 따라 다소 다르다).


*안젤라 게오르규가 부르는, "운명의 힘" 중 4막 처음부분에 나오는 "Pace pace o mio Dio" (신이시여 평화를 주소서). 동굴에 숨어든 레오노라가 이제 그만 평화를 달라며 신에게 호소하는 아리아. 아리아의 마지막 쯤 해서 레오노라가 외부인의 인기척을 들으며 그 대상에게 "저주를!"(maledizione) 이라는 말을 반복하는데, 알고보니 그는 돈 알바로였다. 

인간의 의지는 이미 예정된 운명, 즉 숙명을 거스를 수 없는가? "해를품은 달"과 "운명의 힘"은 "그렇다"는 대답을 들려주는 듯 하다. 대왕대비와 윤씨일가가 아무리 주술과 간계를 써도 연우의 자리는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될 수 없다. 운명의 힘에서도, 레오노라와 알바로가 그렇게 애쓰고 노력하고 고통받아도 함께할 수 없다는 운명은 끝끝내 바뀌지 않는다. 반면에 "공주의 남자"는 이에 대해 다소 다른 대답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령이와 승유가 주어진 상황을 뒤집고, 이에서 벗어나고자 얼마나 애썼고 죽음까지 불사하며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는지가 드라마 내내 너무나도 절절히 나왔기 때문에 그 행복한 결말을 단지 처음부터 그렇게 예정되어 있었다는 숙명으로 치부하기엔 그들의 의지와 노력의 과정이 너무나도 눈물 겨웠었다. 따라서 "공주의 남자"의 운명은, 이미 결론지어진 숙명이라기 보다는 내가 개척하고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의지 추구로서의 "운명"이라는 의미가 더 강해보인다.

Thursday, January 26, 2012

Preliminary Study-베르디의 "맥베스" 트레일러들

"맥베스"는 베르디가 쓴 셰익스피어 오페라 세 편 중 한 편이다 (나머지는 Otello와 Falstaff). 아마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부제가 더 잘 맞을 것같은, 권력과 탐욕으로 폭주하다 살인을 저지르고, 결국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맥베스 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내용적인 면 때문인지, 베르디는 이 오페라에 대해 "멜로드라마"라고 명명하였다.

3월달에 두 번 보러갈 예정인 이 오페라에 대한 사전 연구의 일환으로 유툽에 떠있는 트레일러들을 찾아보았다. 메트에선 토마스 햄슨이 맥베스를, 나디아 미하엘이 맥베스 부인 역을 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맥베스 부인의 브레이크 없는 욕망 및 그와 맞닿아 있는 파멸의 연관고리가 어떻게 드라마적으로 표현될 것인지가 가장 궁금하다. 사실 이 부부의 몰락은 맥베스보다 더한 욕망 덩어리인 부인의 원인이 크다. 어떻게 보면 우유부단한 남편을 쪼아대고 부추겨서 결국은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것도 맥베스 부인. 그런면에선 오페라 내에서 가장 악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맥베스 부인을 마녀로 해석한 논문이 있기도 하다). 그외에도 마녀들의 동굴 장면 및 살인 장면이 어떤 연출로 독창적으로 처리될 것인지, 주역 가수들은 어떠한 음악적 해석을 들려줄지도 무지 기대된다.

1. 먼저 가장 영화적인 영상을 보여주는 코벤트 가든 트레일러. 피가 뚝뚝 흐르는 장면, 피인지 물인지 모르는 액체에 손을 씻는 장면이 거듭 나오며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긴다. 실제 무대 장면은 하나도 안나오지만 끈적끈적임과 동시에 흘러내리는 피의 이미지를 통해 오페라를 관통하는 "감정적 분위기"(살인, 복수, 파멸...)를 가장 잘 전달하고 있는 듯. 맥베스 부인의 주제라 할 수 있는 F단조 선율(서곡에서 이미 나온다)이 배경 음악으로 나온다.



2. 나디아 미하엘이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맥베스 부인으로 열연한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 영상. 레이디 맥베스에 초점을 맞춘 편집 영상이다. 미모가 상당하다. 1:50지점부터 코벤트 가든 트레일러에 쓰인 음악과 동일한 음악인 맥베스 부인의 주제가 나온다.


3. 파리 국립 오페라. 비올레타 우르마나가 맥베스 부인 역을 맡았으며 연출이 상당히 현대적이다. 역시 코벤트 가든과 같은 음악 사용.



4. 도이체 오퍼 베를린의 트레일러. 메트에서 "돈 카를로"의 에볼리 공주를 맡았던 안나 스미로바가 맥베스 부인 역을 부른다. 역시 현대적인 연출인데 살인 장면에선 칼 대신 총을 쓰고 있다.


Cf. 페이스북이나 유툽에 올라오는 오페라 트레일러 영상을 비교해보자면, 메트의 경우 항상 너무 짧은 느낌이 강하다. 오페라 내에서 가장 극적이고 클라이막스적인 부분을 보여주지만 "감질나는 맛보기"이상은 절대 보여주지 않는 세침떼기같은 면이 있다. 트레일러로 한껏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보고싶으면 너네가 직접 와서 봐!"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가끔가다 낚시성 내용의 트레일러 등도 있다 (예-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베드신).

반면에 코벤트 가든의 트레일러는 편집이 가장 예술적이고 완성도가 높다. 메트의 트레일러들이 "맛보기" 이상을 결코 넘어가지 않는것에 비해, 코벤트 가든의 트레일러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지성미와 우아함, 고귀함이 3분 내외에 트레일러에서 고스란히 풍겨져 나온다 (편집하는 사람 누군지 정말 궁금). 영상미가 뛰어나고 영화적인 면이 두드러진다.

독일 오페라단(도이체오퍼,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트레일러도 미국이나 영국 오페라단에 비해 보통 두배는 길고, 편집 또한 안꾸미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마인드가 강한 듯.

Tuesday, January 24, 2012

김환기 회고전-못봐서 아쉬운 전시회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김환기 회고전. 한국에 있었으면 꼭 가서 봤을 전시회라 무척 안타깝다. 그의 작품이 옥션 시장에서 탑을 달린다는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김화백은 그림의 내용을 실현하는 방법, 즉 "텍스트"보단 그 텍스트를 실현하는 "방법"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달, 항아리, 꽃, 인물 등 (동양적인 대상을 그리는) 다른 작가들의 그림에도 흔히 등장하는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배치하고, 색채를 불어넣고, 입체적인 디멘션이 느껴지는 텍스쳐를 입히는 방식에 있어 김화백만의 독특함이 느껴진다. 특히 따뜻한 듯 하면서 손에 잡힐듯한 질감이 느껴지는 텍스쳐는 달, 항아리 등의 일상적인 소재가 더 친근히 다가오며 마치 우리가 보고있는 것을 만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 (1954)

그림속에 보여지는 대상, 즉 텍스트도 시각적으로 아름답지만, 그 텍스트를 실현하는 김화백만의 방식은 시각적 차원을 너머 촉각적 경험을 하게끔 이끈다. 작년에 뉴욕의 구겐하임에서 열렸던 이우환 전시회에서 봤던 작품들은 시각을 넘어 공간과 현상학(phenomenology), 실존 철학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던 반면, 김환기의 작품 중 특히 한국적인 정물을 소재로 하는 그의 작품은 친근함, 감촉, 따스함, 온기 등의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갈 수 없어서 정말 아쉽다.
  
이번 전시에 대한 기사 중 가장 잘 쓴 것으로 보이는 글

Sunday, January 1, 2012

Happy New Year

밖에 불꽃놀이 소리가 나서 시계를 보니 2012년 1월1일 새벽 12시다. 바그너 페이퍼 쓰느라고 "발퀴레" 1막 중 지그문트와 지글린데의 러브듀엣을 듣는 중인데, 때마침 노퉁 모티브가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