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14, 2012

벨리니의 "Norma" 중 "Casta diva" (순결한 여신), 그리고 영화 "The Iron Lady"(철의 여인)

어제 보고 온 영화 "The Iron Lady"에 "Casta diva"(순결한 여신)이 나왔다.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 반가웠음과 동시에, 영화의 컨텍스트 내에서 이 아리아가 어떤 메타포를 가지는 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페라 중 이노래는 드루이드교를 이끄는 여자 사제인 노르마가 신성한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등장하며 부르는 아리아(entrance aria, 보통 "cavatina"라고 한다)이다.

영화에서 "Casta diva"는 두 번 나온다. 한번은 대처 총리가 젊은 시절 남편이랑 데이트 하면서 보던 오페라가 벨리니의 "Norma"였다. 실제 오페라 무대 모습은 안나오고(당연히 런던의 코벤트 가든일 것이라는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커플이 관객석에 앉아 미소 지으며 좋은 시간을 가지는 장면에 이 아리아가 OST로 들린다. 두번째는 대처 총리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심정으로 총리직을 사임하며 다우닝가 10번지의 자택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에서 또한번 이 노래가 나온다. 그 많은 오페라 중 왜 하필 "노르마"를 선택했을까? 단순히 이 아리아가 듣기에 좋고 유명하다는 점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가사를 보자면,

순결한 여신이시여, 그대의 은빛이
신성하고도 오래된 나무들을 비추는 것처럼
그대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려짐 없이 우리에게 드러내 주옵소서.
여신이시여
그대의 불타는 영혼을 가라앉히소서.
또한 그대의 대담한 정열을 진정시키소서.
그대가 하늘에서 지배하는
땅에 평화를 전해주시옵소서.

Casta Diva, che inargenti
queste sacre antiche piante,
a noi volgi il bel sembiante
senza nube e senza vel...
Tempra, o Diva,
tempra tu de’ cori ardenti
tempra ancora lo zelo audace,
spargi in terra quella pace che regnar tu fai nel ciel...

이는 노르마가 하늘에 기도하는 전형적인 "기도" 아리아이다. 노르마의 사제라는 위치, 따라서 신성함과 권위가 전면에 드러나는 장면이며 오페라를 통틀어 노르마를 가장 숭고하고 우아하게 조명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밝혀질 노르마의 숨겨진 사실들 (법을 어기고 비밀 결혼 및 아이들까지 두고있음. 게다가 남편은 적국의 장군)을 생각해볼 때 참으로 아이러니한 아리아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아리아가 불려지는 순간, 노르마는 이 세상을 초월해보일 정도로 가장 신성하고 숭고한 여신이 된다. 진정으로, 노르마에 의해 불려지는 노르마를 위한 아리아이다. 영화는 이 아리아를 택함으로서 오페라 캐릭터로서의 노르마가 영화속의 대처라는 인물에도 투영되어 보이게끔 한다. 영화의 컨텍스트와 노르마의 컨텍스트를 생각해본다면,

1. 노르마는 드루이드교를 이끄는 지도자이다. 최고의 여사제장이며 로마의 탄압에 대항해 부족의 결속과 단결을 책임지며 권위와 카리스마로 이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 대처의 "총리"로서의 역할과 통하는 부분이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극중 노르마는 은근히 연정에 많이 휘둘리는 인물이다. 드루이드족들이 얼른 로마를 치자고 할 때 노르마는 폴리오네와 아이들 생각에 다른 이유를 들어 아직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폴리오네를 죽일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쌓인 정 및 아이들 때문에 행하지 못한다. 그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또한 죽여버리려고 시도했지만 (이렇게 되면 "노르마"가 아닌 "메데아"가 된다) 차마 실천하진 못한다. 이에 반해 대처는 영화에서 훨씬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자식이나 남편보다는 정치가 언제나 우선 순위이며 이에 대해 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2. 노르마는 그러나 정치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로마의 장군인 폴리오네와 내연관계를 이루어 두 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노르마가 사제직을 수행하거나(사제는 결혼금지) 철전지 원수의 나라인 로마에 대항하는데 명백한 걸림돌이자 오점이다. 노르마가 자신을 배신한 폴리오네를 죽이려 칼을 들이대는 순간에도(이는 자신의 순정을 농락한 배신자를 처벌하는 의미 외에 적국의 장군을 죽인다는 애국적인 행위라는 두가지 명분을 가진다), 마지막에 자신의 죄를 만천하에 밝히고서 화형장작 위로 스스로 오르려는 순간에도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바로 이 아이들이다. 즉, 끝내 아이들의 아빠라는 점 때문에 폴리오네를 찌르지 못하며, 장작에 오르기 전 자신의 아버지인 오로베소에게 제발 아이들은 죽이지 말고 잘 돌봐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이 마지막 장면에선 안 울수가 없다ㅠㅠ).

이는 겉보기에 위엄과 권위로 다가오는 지도자라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있는 한 어머니이자 아내로서의 역할을 벗어날 수 없었음을 오페라의 컨텍스트를 빌려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지. 영화에서도 대처가 매달리는 아이들을 무시한 채 매몰차게 떠나는 장면, 딸이 운전면허 딴 것을 자랑할 때 같이 공감하며 좋아하는 모습이 그리 드러나지 않는 점(국가적 대사에 비해서는 너무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의 환영이 나타나 대처에게 당신이 정치하느라 나와 아이들은 항상 뒷전이었다고 소리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는 모두 국가의 지도자 vs 가족(아내이자 어머니)이라는 대결구도로 볼 수 있는 역할 갈등들이다.

3. 오페라의 엔딩에서 결국은 폴리오네와의 관계를 고백한 노르마는 명예로운 퇴장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적국의 장군과 내통한 배신자이자 아이들에게 불명예스러운 어머니로 남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어 속죄의 마음을 제대로 보이겠다는 결정이다. 대처 총리의 경우 영국병을 치유하는 와중에 부딪혔던 엄청난 반발이 축적되며 보수당에 대한 반감이 커가던 와중, 결국은 대외적인 분위기를 받아들여 사임을 결정한다. 굳이 선거에 나가 패배자라는 오명을 얻느니 여태까지 쌓아온 업적(영국병 치유, 냉전 종결, 아르헨티나 및 포클랜드 문제의 성공적 처리)을 바탕으로 영국의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강철같은 카리스마의 리더쉽을 보여준 성공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길 선택한 대처 총리. 물론 노르마와 같은 극단적인 결말은 아니라 할지라도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며 명예롭게 퇴장한다는 점에선 두 사람이 닮아있다.

오페라 속 캐릭터로서의 노르마는 지도자, 아내, 엄마라는 다양한 역할을 가지며 이는 끊임없이 갈등 관계를 만들어낸다. 대처 총리의 위차나 역할도 노르마가 처한 입장 및 상황과 완전 일치하진 않지만 겹치는 부분이 어느정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리아는 영화 속에서 적절한 음악적 메타포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Casta diva"에 대해 다시 유툽 클립들을 찾아보았다. 영화에서는 칼라스 목소리가 나왔던 것 추측하는데, 나의 best choice는 카바예, 플레밍, 게오르규 등이다. 칼라스도 나쁘진 않으나 목소리가 신성한 여신이라하기엔 너무 "인간적"이다. 그중 특히 긴 호흡과 레가토 선율, 서정적 표현력, 그리고 깨끗한 음색이 특징인 카바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명연주이다. 이 이상 더 완벽한 연주를 찾긴 힘들다 할 정도로 호흡 테크닉 및 긴 프레이징이 압도적이다. 1974년 프랑스 오랑쥬 페스티벌 실황인데 당시 야외공연 때 불던 바람으로 인해 휘날리는 옷자락은 오히려 더 멋있는 분위기를 내는 것 같다. 말그대로 벨칸토의 여신이 부르는 여신 아리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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