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5, 2012

베르디 “Aida”-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베르디 “Aida”-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초연: 1871,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

대본: Antonio Ghislanzoni

지휘: Marco Armiliato

람피스: James Morris

라다메스: Marcelo Alvarez

암네리스: Stephanie Blythe

아이다: Violeta Urmana

프러덕션: Sonja Frisell

무대 디자인: Gianni Quaranta (영화 “전망 좋은 방” 미술 감독)

2월 16일날 학교에서 수업 마친 후 메트 오페라에 아이다를 보러갔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개선행진곡에 진짜 코끼리와 말이 등장하며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준다고 하는지라 내심 기대가되었다. 대규모의 합창 장면, 개선행진 시 들어왔다 나가는 긴 행렬들, 거대한 신전,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거대한 돌무덤 등 베르디의 오페라 중 이와같은 압도적인 무대가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작품이 바로 “아이다”이다. 바로 이런점 때문에 베로나의 콜로세움같은 거대한 야외극장은 아이다 공연을 위한 비쥬얼적으로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역시나…화려한 스펙터클 하면 세계 어느 오페라 하우스를 압도하고도 남을 메트답게(그만큼 다른 극장에 비해 예산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 정말 화려하긴 했다. 기대했던 코끼리는 안나왔지만 말은 제법 나왔다. 헌데 연주도중 말이 자꾸 화난 듯이 앞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오케스트라로 뛰어든다거나 가수들을 공격한다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조마조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무대에서 심통부리는 듯한 말을 보니 차라리 코끼리가 빠진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을 등장시키는 장면이 나쁘진 않지만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동물 특유의 야성적 본능을 누르게끔 한다는 점-말도 비록 인간적으로 윤리적으로 다뤄진다 할지라도-이 그리 달갑게 보이지는 않는지라, 코끼리가 안나오는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무대 연출은 영화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의 미술을 담당했던 지아니 콰란타인데, 평소 메트 오페라의 전반적인 경향에 걸맞게 상당히 고전적이고 그래서 시각적으로 편안하고도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굳이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실제 의상과 자연 환경이라기 보다는 그 나라들을 생각했을때 우리가 떠올리는 "분위기" 및 "상상된 이미지"에 부합하는 무대였다.

베르디가 오텔로를 작곡한 후 카이로 오페라 극장 개관을 기념해 위촉 받은 작품인만큼 베르디 특유의 후기 음악적 어법이 곳곳에 드러난다. 초기 오페라에서 보이는 쿵짝짝 리듬 및 섹션별로 명확하기 나눠지는 것이 사라지며 장면들이 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이 명확한 종지점과 구분을 피한채 끝없이 이어지는 바그너의 음악적 방향으로 베르디 또한 따라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Art of Transition”).

성악가들에 대해 말하자면, 이날 공연은 “아이다”가 아니라 “암네리스”였다. 스테파니 블라이트의 압도적으로 큰 성량이 나머지 모든 성악가들을 다 죽여버렸다 할 정도로 노래 실력 및 무대 존재감에 있서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암네리스가 사랑하는 라다메스를 맡은 알바레즈의 노래는 평소에 비해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해였다. 너무 막강한 암네리스를 만나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등장해서 처음 부르는 entrance aria라 할수있는 “Celeste Aida”에서도 연인을 향한 애틋하고 다정한 느낌 보단 불안하고 뭔가 찌질해보일 정도였다. 다소 비실비실했던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맡은 비올레타 우르마나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우르마나는 전반적으로는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시원한 가창을 들려주진 않았다. 에티오피아 공주인 아이다는 적국인 이집트에 인질로 잡혀와서는 그곳의 장군인 라다메스와 사랑에 빠지는, 조국과 연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번민하는 역할이다(이 점에 있어 자신의 가문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공주의 남자”의 세령이와 상당히 비슷한 처지다). 그런 마음의 아픔 및 갈등이 노래 전반적으로 느껴져야는데, 암네리스의 무지막지한 “미친 존재감”이 아이다를 그만 가려버렸는지 절절함이 호소력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실 "아이다"는 이 세 인물의 사이에 흐르는 긴장 관계 및 심리전이 극을 이끌어간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페라의 주된 스토리 축인 삼각 관계를 이루는 아이다, 라다메스, 암네리스 사이에 팽팽한 실이 당겨진 듯한 긴장감이 시종일관 감지되어야 한다. 즉,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사회적으로 서로 허락되지 않은 관계이기에 그들의 사랑을 항상 숨겨야 하며, 혹시나 들킬까하는 조마조마함이 늘상 뒤따른다. 아이다와 암네리스는 서로 연적 관계인데, 둘이 같이 있을 때면은 암네리스는 질투심과 복수의 감정, 아이다는 불편함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낀다. 암네리스와 라다메스는 후자의 전자에 대한 일방적 집착과 사랑이 급기야는 애증으로 변하게 된다. 허나, 암네리스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한 나머지, 세 인물 사이의 이러한 드라마적 긴장의 밸런스가 깨져버렸고 따라서 암네리스가 왜저리 자기보다 못해보이는 남자에게 집착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기회가 있다가 카우프만의 강렬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라다메스 장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이날 블라이트를 제외한 성악가들에게서 뚜렷한 느낌을 받지 못했던 반면, 감동적이었던 것은 오히려 베르디의 음악과 드라마였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에서 “아이다”를 본 기억이 있긴 하지만 그때 베르디의 음악이 특별히 감동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메트의 라이브 공연에서 오래간만에 들어본 아이다 음악은 정말 완전 다르게 다가왔다. 초기 작품에 비해 훨씬 박진감있고 세련되고 깊이있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단순히 오케스트라 반주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는 들리는 관악기 또는 하프의 효과적인 사용, 앞서 말한 “Art of Transition”의 면모, 듀엣과 앙상블에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몰아가는 긴장감은 가히 베르디의 음악적 어법의 완성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라다메스, 아이다, 암네리스 누구하나 단편적인 1차원적 캐릭터가 아니라 조국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름대로 복잡한 심리를 가진 인물들이다 (이점에 있어, 같은 후기 작품으로 분류되는 “오텔로”나 “돈 카를로”또한 비슷하다). 그러한 갈등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아이다며, 이후 라다메스 또한 같이 도망가자는 아이다의 간청에 정말 조국을 떠날 것인지 갈등하게 된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 표독하던 암네리스 또한 라다메스를 죽이기로 한 판결을 후회하며 혹시 다시 뒤집을 수 없을까 하며 고뇌하는 장면이 나온다.

평소에 무덤덤하게 생각했던 “아이다”가 이번 메트 실황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조만간 프레니(아이다)/발차(암네리스)/카레라스(라다메스)/카라얀(지휘) 음반을 주문해서 듣고 또 들어야겠다.


*예전에 분석시간에 마크 선생님이 과제로 내어주셨던, 라다메스와 암네리스의 듀엣. 조국과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이다는 전쟁 포로로 잡혀온 자신의 아버지인 아모나스로 왕에게, 라다메스를 통해 알아낸 군사기밀을 말해버리는데 이를 암네리스가 목격한다.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결국 잡히고, 여전히 라다메스에 대한 연정을 끊지 못한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에게 아이다를 버리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지만 라다메스는 단호히 거절한다. 동영상은 암네리스가 라다메스를 회유하지만 라다메스가 거부하고, 이에 암네리스가 격분하는 바로 그장면이다.

이 유툽 클립은 당시 숙제하기 위해 찾아본 것중 가장 좋았던 것으로, 빈 국립 오페라의 반주로 도밍고와 아그네스 발차가 노래하는 연주이다. 동영상에서 발차는 이미 전성기를 훨씬 넘어선 나이의 할머니로서 고음에선 팔세토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연인을 위협함과 동시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갈구하는 나약한 암네리스의 모습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그려낸다. 연주에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와 완벽한 표현은 목소리의 쇠퇴를 잠재우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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