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11, 2012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메트로폴리탄 오페라

1. 희극 오페라-몰입의 어려움

오페라의 내용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비극적인 "오페라 세리아"와 희극적인 내용의 "오페라 부파"인데, 후자는 대부분 결혼에 관한 것이며 전자는 삼각관계 또는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하다 결국은 죽음을 맞는 연인들에 관한 것이다. 평소 즐기며 익숙한 장르가 아무래도 비극 오페라라서 그런지, 아니면 시공간이 맞지 않는 유머코드가 어색해서인지, 이상하게 희극오페라는 나랑 맞지 않는다. 오페라를 보러가면 전날 밤 아무리 서너시간밖에 못잤다할지라도 왠만하면 졸지 않는데(특히 라이브 공연일소록), 이때까지 유일하게 완전 잔 적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영화관에서 봤을때이다. 도저히 공감가지 않는 스토리에, 유치찬란한 무대에, 음악도 그저그렇고...이상하게 몰입이 안되더니 급기야는 완전 자버렸다. 중간에 일어나서도 집중해서 볼려고 노력했으나 거듭 그냥 수면으로 몰입-_-;; 따지고보면 "마술피리"는 부파 오페라가 아닌 "징슈필"(Singspiel)이고 나름 자유주의 사상등의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명작이다. 또한 동화적 내용과 판타지로 인해 크리스마스즈음해서 어린이들에게 많이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술적, 도덕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결코 합이 맞지 않았던 "마술피리"....앞으로 이 작품을 분석하고 공부는 할지언정, 라이브로 보러갈 일은 없을 듯 하다.

완전히 자지는 않았지만 졸리거나 졸릴뻔했던 다른 작품으로는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있다. 가히 오페라 부파계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지난달에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디아나 담라우의 주연으로 봤었다. 아무래도 실제 라이브 공연이기때문에 "마술피리"때처럼 완전히 수면으로 빠지진 않았으나 보면서 좀 지루했던 것은 사실이다. 부파에서 항상 등장하는 편지 조작 에피소드를 비롯해 다른사람들 웃을때 난 도저히 안웃기는 장면들 등등..롯시니의 기악적이고 기교적인 선율을 듣는 것과 디아나 담라우의 타고난 연기력과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듣는 건 좋았으나 전반적인 오페라의 스토리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그래" 등도 보면서 상당히 지루함을 느끼는 오페라 부파들이라 수면의 위험성이 곳곳에 산재한다.

2. 도니제티의 유머코드-유일하게 몰입이 되는 희극 오페라

이처럼 전반적으로 희극 오페라와 거리가 먼 나이지만 유일하게 희극 오페라치고 몰입이 되는 작곡가가 도니제티이다. 사실 도니제티는 벨칸토의 정수라고 할만한 "루치아"(Lucia di Lammermoor)의 작곡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점에 있어선 역시 벨칸토 비극에서 한가닥 하는 벨리니("노르마"의 작곡가)와 쌍벽을 이룬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벨칸토의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도니제티만의 특징으로는, 그는 벨리니와 달리 부파 장르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L'elisir d'amore"(사랑의 묘약), "Don Pasquale," "La fille du Regiment"(연대의 딸, 불어 오페라) 등  그의 대표적인 희극 오페라들은 19세기 부파 중 최고의 명성과 인기를 자랑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봤던 "연대의 딸"(니노 마차이제, 로렌스 브라운리 주연)을 비롯해 3월9일날 봤던 "사랑의 묘약"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코믹 오페라라도 도니제티의 작품은 확실히 나와 합이 맞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3. "사랑의 묘약"-메트로폴리탄 오페라

Conductor: Donato Renzetti
Adina: Diana Damrau
Nemorino: Juan Diego Flórez
Belcore: Mariusz Kwiecien
Dulcamara: Alessandro Corbelli

이날 공연은 실로 드림팀, stellar cast의 전형이라 할만큼 최고의 가수진이었다. 디아나 담라우가 아디나를, 플로레스가 네모리노를, 퀴비쳰이 벨코레를 불렀으니 이 이상의 더 좋은 가수진을 찾기 힘들다 할 정도로 드림팀이었다. 아디나, 네모리노의 벨칸토 테크닉은 완벽했으며 벨코레의 군인 연기도 인물에 딱 들어맞았으며 돌팔이 약장수 둘카라마 또한 극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이 오페라는 실제론 평범한 보르도 와인에 불과한 것을 사랑의 묘약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아디나를 사모하던 네모리노는 결국 이 가짜약이 진짜인줄 알고 마시지만 어찌어찌하여 결국은 거짓말처럼 이 둘의 사랑이 이뤄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똑같이 사랑의 묘약으로 부터 일이 전개되나 결국은 연인의 비극적 죽음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 바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이다. 묘약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공유하다보니 이 오페라 중간에도 아디나가 트리스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나오는 음악은 바그너랑은 전혀 상관이 없다(바그너의 "트리스탄"은 "사랑의묘약"보다 훨씬 뒤에 작곡되었다).

*아디나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책을 읽어주는 장면. 사랑의 묘약덕에 트리스탄은 이졸데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데...이는 차후 일어날 아디나와 네모리노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처절한 사랑에 고통받고 결국은 죽음까지 이르게 되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는 전적으로 대조되는 결말이다. 클립에서 아디나는 안나 네트렙코, 네모리노는 롤란드 비야존. 

전날 새벽에 각종 일처리 한다고 한 다섯시간밖에 못잤지만 오페라를 보는내내 전혀 졸리거나 지루하지 않았으며, 희극 오페라임에도 몰입하며 보았다. 그 이유로는 우선 담라우와 플로레스의 탁월한 가창력과 연기력에 힙입은 바가 크다. 플로레스는 가짜약인 포도주를 마시고 술취한 연기를 너무 웃기고도 적나라하게 해주었다. 특히 술이 취한 채 횡설수설 비틀거리며 헤롱헤롱하는 연기를 비롯해 요즘 유행하는 각종 댄스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정말 즐겁게 해주었다. 담라우 또한 무대를 갖고노는 흥이 대단한 가수인데, 이날 찰떡호흡 플로레스를 만나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끼가 발산된 듯 하였다.

중간 중간 웃긴 장면들에선 관객들이 다같이 웃었고, 종이위에 파스텔이나 크레용으로 대충 그려 만든 듯한 허접한 무대 또한 어설프기 보단 귀엽게 느껴졌으며, 각 캐릭터들은 사이의 오해와 밀고당기기는 유치하다기 보단 사랑스러울 정도였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이 약 한번 먹어봐, 신경통, 관절염, 위궤양, 두통, 치통, 상처 곪은거 전부 다 들어~~"라고 외치던 약장수 또한 허세스럽고 사기꾼이라기 보다는 넉살좋은 통닭집 아저씨의 포스였다.

알고보니 이번 시즌을 끝으로 허접스럽지만 귀여웠던 그 무대는 사라지고, 다음시즌에는 다소 현대적인 연출의 "사랑의 묘약"이 올려질 예정이란다. 모던한 배경의 "사랑의 묘약"은 어떻게 펼쳐질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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