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4, 2012

레이디 맥베스에 대한 베르디의 코멘트

저번 수업시간의 주제는 베르디의 "리골레토"(Rigoletto)였지만 스승님께서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맥베스"(Macbeth)에 대한 자료를 나눠주시고 극 중 유명한 몽유병아리아("Una macchia e qui tuttora"-남편과 함께 왕을 죽인 레이디 맥베스가 죄책감에 미쳐버린 후 부르는 노래)도 칼라스의 노래로 들려주셨다. 안그래도 지난주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맥베스 보고난 이후 너무너무 좋은 나머지 유툽 검색해서 몽유병 아리아를 여러 가수들 버젼으로 줄창 듣고 있는 중이었는데 스승님께서 어찌 아셨는지,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나눠주신 자료 중, 레이디 맥베스에 대한 베르디의 코멘트가 있었다. 1848년 11월 23일날 파리에 머물던 베르디가 살바토레 카마라노(Salvatore Cammarano)에게 보낸 편지이다. 카마라노는 "레냐노의 전쟁"(La battaglia di Legnano)에서 같이 작업했던 대본가인데 당시 나폴리에서 "맥베스"를 한창 무대 올리려는 중이었다 (맥베스의 초연은 1847년 피렌체에서 이루어졌다). 이 편지를 보면 베르디가 원했던 레이디 맥베스의 목소리는 어떤 음색이며 전반적인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한가를 이해할 수 있다. 베르디가 말하는 레이디 맥베스의 캐릭터는 청아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섬세한 목소리랑은 상반되는 어둡고, 무겁고, 거친 악마적 이미지다.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리골레토"의 질다, "에르나니"의 엘비라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맥베스"에 나오는 음침한 마녀들을 훌쩍 뛰어넘는 사악한 포스와 강렬한 기가 느껴지는 그런 캐릭터로서의 레이디 맥베스를 베르디는 원했던 것이다. 다음은 베르디의 편지인데 여기서 타돌리니는 당시 잘나가던 소프라노 가수이다. 베르디의 말로 추측해보건데, 타돌리니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전형적인 리릭 소프라노였던 듯 하다.

현재 “맥베스” 리허설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어느 오페라보다 이 작품에 관심이 많은지라 몇마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타돌리니가 레이디 맥베스를 부를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녀가 이 역을 맡아야 한다고 했을 때 [사실]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타돌리니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 지 아실 것입니다. 그녀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우리 모두를 위해 저는 다음을 말씀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돌리니의 음색은 이 역을 부르기엔 너무 섬세합니다. 이 얘긴 당신께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릴수도 있습니다. [물론] 타돌리니는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허나 저의 레이디 맥베스는 거칠고 사악한 [인물]입니다. 타돌리니가 노래부르는 것은 완벽합니다. 허나 저는 레이디 맥베스가 노래하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습니다.* 타돌리니는 깨끗하고, 유연하고, 강렬한, 환상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허나 레이디 맥베스의 목소리는 독하고, 텁텁하고, 어두운 [음색이였으면] 합니다. 타돌리니의 목소리는 천사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레이디 맥베스가 악마같은 목소리였으면 합니다 […]


*역주: 레이디 맥베스의 노래 라인은 서정적이고 마냥 예쁘기만 한 전형적인 아리아와는 차별되기에 베르디가 "노래부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베르디의 레이디 맥베스에 대한 이토록 분명한 인물설정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나폴리 연주에서는 타돌리니가 그 역을 맡게된다. 베르디가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두개의 곡 중 하나로 간주했던 몽유병 아리아(다른 하나는 레이디 맥베스와 맥베스의 듀엣)를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부른다면 정말 몰입이 안 될 것 같긴하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권력에 대한 욕망, 살인도 서슴치 않을 정도의 대범함, 결국은 죄책감으로 광기에 휩쌓인 모습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강하고 거칠고 차가운 열정의 목소리가 요구된다.

유툽 클립중 고르고 고른 것은 바로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녹음이다. 아주 강렬한 음색을 바탕으로 연기의 혼이 잘 전달되는 듯. 루트비히의 녹음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high Db음이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루트비히가 원래 메조 소프라노다 보니 고음을 내는 것이 버거웠을 것이라 쉽게 추측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음은 사실 소프라노라도 제대로 부르기가 쉽지가 않다. 베르디는 악보에 pppp를 표기하였는데, 극단적인 작은 음량으로 고음을 내는 것은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 두번 본 메트 오페라 공연에서 레이디 맥베스를 맡았던 나디아 미하엘도 두번 다 이 고음 엔딩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였다. 

*몽유병 장면의 가사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텍스트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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