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25, 2012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푸치니의 "투란도트"(Turandot)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에서 오늘 라이브 생중계로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방영하였다. 6년전에 뮌헨을 뜬 이래 독일 오페라나 독일 성악가들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같이 떠오르던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 출구 없는 오페라의 블랙홀로 빠지게 된 것도 그곳을 열심히 드나들며 몬테베르디부터 쇤베르크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원없이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서양이 막고 있어 직접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터넷으로나마 예전의 설레고 감동적이었던 경험을 다시 할 수 있게 참으로 기쁘다. 이 좋은 공연을 회원가입이나 돈 받는 것 없이 전적으로 무료로 보여준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오늘 본 "투란도트"는 이번 시즌 메트에서도 하고있는 작품이다. 보수적인 미국 청중의 취향에 맞게끔 제피렐리의 클래식하고 화려한 연출이다. 이에 반해 바이에른의 연출은 미래주의, 사이언스 픽션이 컨셉이다. 이점에 있어선 주빈 메타가 지휘한 발렌시아의 "반지" 사이클과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이다.

바이에른 오페라의 "투란도트"는 시대적으로는 2046년, 빚더미에 올라앉은 유럽대륙이 중국에 넘어감과 동시에 유럽이 중국의 지배를 받는다는 설정이다. 의상이나 분장은 전통적인 "authentic"한 중국과는 거리가 멀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오리엔탈 풍(중국과 일본이 묘하게 섞여있다)이 주가되며 조명은 비닐이나 메탈 소재에서 나오는 번뜩이는 빛, 도시의 네온 싸인이 지배한다. 최신 트렌드에 발맞추어 비디오 프로젝션이 효과적으로 쓰이며 때때로 서커스적인 요소들도 가미된다. 예를들어 덤블링 묘기, 비보이들이 하는 것과 같은 현란한 춤,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있기, 피아노줄 타고 날라다니기 등은 마치 로버트 르파쥐의 "태양의 서커스"를 보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1막에서는 투란도트 공주에 대한 구혼자 중 한명인 페르시아 왕자가 사형당하는 장면에서는 높은 단상 위에 선 왕자의 몸 주위에 묶여진 끈을 통해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익숙한 거열형을 암시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2막에서 황제가 등장할 때 우리나라의 징 비슷한 악기들을 쓰는데 이때 카메라가 무대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석을 비춰줌으로써 이국적인 독특한 음향, 음색 효과에 대해서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는 점도 지적으로 보였다(카메라 잡는 사람이 확실히 음악에 대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칼라프 왕자가 투란도트 공주의 수수께끼를 풀 때마다 비디오 이미지를 통해 빙하(이는 투란도트 공주의 icy princess를 표상한다)가 산산히 무너지는 것을 보여준 것 또한 효과적인 드라마적 장치였다. 동시에 높은 곳에 매달려있던 공주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오게 한 것도 공주의 차가움과 비인간성이 칼라프의 용기와 도전정신에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음을 공간적으로 잘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3막의 초반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칼라프 역의 이용훈 님이 멋있게 불러주었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노예소녀인 류(Liu)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무대인사 하러 나오신 이용훈님. 선배님 자랑스러워요!! 노트북을 찍은 것이라 사진 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전체적으로 최신의 연출경향(비디오, 서커스적 요소, 테크놀로지)을 모두 반영한 화려함과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무대였다. 가수들 노래또한 훌륭했으며 지휘자(마르코 아밀리아토)의 박력있는 해석 또한 무대 연출과 잘 부합하였다.

공연을 보고난 후 떠오른 생각은 바로 노예소녀인 류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비록 제목은 "투란도트"이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진정한 주인공은 류인 것으로 보였다. 칼라프와 그 아버지인 티무르를 위해 끝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최후에는 죽음으로써 투란도트에게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류. 이에반해 처음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투란도트 공주는 막판에 가선 정신적으로 칼라프의 용기에 굴복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류의 희생정신에도 감복하는 "수동적" 캐릭터로 결론나고 만다. 오페라 또한 류에 대한 찬양의 말로 끝나며("Liu, all goodness! Forgive us! [...] Liu! Poetry!") 그녀의 희생을 더 없이 숭고한 것으로 만드는 일종의 "제의"로 끝맺는다. 이쯤해선 마치 바그너의 "반지"의 최후를 장식하는 브륀힐데의 자기희생적 "제의"와 비교해서도 완전히 같진 않지만 어느정도 병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투란도트를 맡은 이레네 테오린과 함께 무대인사 중인 이용훈님. 

시작은 투란도트였으나 끝에가선 류의 드라마로 끝나버린 오페라. 투란도트는 그녀를 존재를 정의하던 철의 장막이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며, 류는 노예소녀라 할지라도 결국엔 숭고한 대상으로 승화되기 위해 존재한다. 주연과 주연을 다루는 방식, 그 목표점을 향한 여정에 있어 푸치니의 이 두 여성 캐릭터 취급은 우리의 관습과 일상적 기대를 벗어나있다. 이는 아마도 푸치니가 "투란도트"를 끝까지 다 못쓰고 죽어버린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오페라를 끝까지 썼다면 투란도트와 류에 대한 이 어정쩡한 드라마적 긴장관계가 좀 더 부드럽게 조율되지 않았을까. 


*투란도트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1막의 피날레이다. 류의 애절한 아리아인 "Signore, ascolta"로 시작해 칼라프의 "Non piangere, Liu"로 이어지며 마지막엔 세명의 대신들(핑, 퐁, 팡), 칼라프, 티무르, 류, 코러스가 함께하는 콘체르타토로 끝난다. 음악이 진행되면서 템포도 점차 빨라지고 분위기도 더 극적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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