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25, 2011

영화 "A Dangerous Method"-사운드트랙으로서의 바그너 음악

올해 9월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영된 "A Dangerous Method"를 보고왔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프로이트와 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생각지도 못했던 바그너의 음악. 읽어본 어떠한 프리뷰나 리뷰에서도 바그너의 "반지"를 모티브로 한 음악들이 쓰였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기에 바그너 음악이 쓰였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A Dangerous Method"의 공식 트레일러. 처음 나오는 음악은 "라인의 황금" 중 니벨하임의 대장간 음악을 변용한 것이다. 

때로는 원래 선율 형태로, 때로는 변화된 리듬과 화성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나오던 "반지" 라인들-"라인의 황금"에 나오는 서곡, 니벨하임의 대장간 음악, 발할라 주제, "발퀴레"에 나오는 지그문트와 지글린데 선율들(이 둘은 생각만 해도 너무나도 가슴아픈 커플이다), 발퀴레 주제, 불의 신인 로게의 화음, "지그프리트"에 나오는 지그프리트 목가 선율 등... 이 "반지" 음악 때문에 계속해서 메트에서 했던 "발퀴레"와 "지그프리트"가 떠올랐고, 특히 "발퀴레"에서 지그문트와 지글린데 역할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던 두 성악가(Jonas Kaufmann&Eva-Maria Westbroek)까지 계속 생각났다. 어떨때는 대사보단 음악에 귀기울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더불어 "반지"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로버트 도닝턴의 책 "Wagner's Ring and Its Symbols"도 기억났다.

전반적으로 봐서, 이 영화에 반지의 선율들을 사운드트랙으로 쓴 것은 너무나도 기가막히게 적절한 선택이다. 반지에 나오는 각 선율들이 상징하는 바와 그 선율들이 나오는 드라마적 컨텍스트가 영화의 내러티브와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분석 및 음악의 사용에 대해선 다음에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영국식 액센트가 들어간 영어에다 뜻하지 않게 만난 바그너 음악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대사를 세세하게 다 이해하진 못했다. 바그너의 음악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였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반지"의 내러티브를 따라간 듯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 특히 지난 5월말부터 완전히 빠져 있었던 "발퀴레" 속 지그문트와 지글린데 선율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영화에 몰입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사운드트랙 때문에 이렇게 영화보는게 힘들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다 디테일한 리뷰를 위해서 한번 더 보거나 아님 아마존에 떠있는 책을 사서 보거나, DVD를 봐야할 듯.

A Dangerous Method (Movie Tie-in Edition): The Story of Jung, Freud, and Sabina Spielrein by John Kerr: Book Cover
*"A Dangerous Method"의 책 버젼 표지-왼쪽이 융(Carl Jung), 중간이 자비나 슈필라인(Sabina Spielrein), 오른쪽이 프로이트(Sigmund Freud)


*반지의 특정 주제가 들릴때면 항상 떠오르는 연상들 

1. 니벨하임의 대장간 음악-스토니브룩에서 마지막 학기에 썼던 페이퍼인 “Transformational Music in the Ring Cycle”과 바그너 좋아하는 예전 지도 교수 

2. 발할라 주제- eine herrliche Des-Dur Musik. 당당하고 위엄있는, 신들의 대장으로서의 보탄의 음악 

3. 지그문트와 지글린데-메트 오페라에서 두 역을 연기했던 요나스 카우프만와 에바-마리아 베스트브룩. 오페라 나오는 캐릭터들 통틀어 가장 맘 아픈 커플…눈물없이 볼 수 없음. 

4. 발퀴레 주제-Weitzmann과 증3화음 (“Der übermässige Dreiklang”: 이론사 시간에 요약 숙제로 했던 논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발퀴레” 프로덕션 중 3막 오프닝 장면, 데보라 보이트(Deborah Voigt) 

5. 로게 주제-Neo-Riemannian LPR cycle, 변형이론에 기반한 David Lewin의 분석, 발퀴레 엔딩 장면에서 항상 보이는 불이 번지는 모습 

6. 지그프리트 목가-2007년도에 방문했던 스위스 루체른 근교의 Tribschen에 있는 바그너 생가. 이곳에서 바그너는 아내인 코지마의 생일 선물로 이 곡을 작곡하였고 이후 "반지" 중 지그프리트의 주제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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