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24, 2011

푸치니 "라보엠"-메트로폴리탄 오페라

11월 18일날 푸치니의 라보엠을 보고왔다. "나비부인" 및 "토스카"와 더불어 푸치니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헌데 이상하게도 그다지 흥미는 안가는 작품인데...라이브로 봐도 역시나 그렇다. 푸치니의 초기 작품이라 그런지 음악도 왠지 밋밋하게 들리고 드라마틱한 사건도 막판에 여자 주인공이 폐병걸려 죽는다는 점 말고는 없고, 다른 베리즈모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감정적 묘사도 없이 그냥저냥 잔잔하고 정적으로 흘러가다 끝나는 그런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페라를 보러 간 이유는 지난 학기에 라이브로 봤던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날 플라시도 도밍고 지휘)에서 주역이었던 홍혜경씨를 처음 보고 감동받은 나머지 이번 시즌에도 홍혜경씨 공연이 있으면은 꼭 가리라 마음 먹었었기 때문. 전반적으로 성악가들은 정말 잘해주었고 고전적이면서도 정교한 메트의 무대 디자인(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 작품)은 보는 내내 황홀하였다. 특히 2막의 커텐이 열리면서 너무나도 정성스럽게 치장된 카페 모무스가 드러나는 순간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독일에선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미국인들(구체적으로 뉴요커들)은 무대가 기대이상으로 스펙터클하거나 화려한 비쥬얼로 압도할 경우 그 무대가 보이는 순간 박수를 보낸다. 바그너의 "발퀴레" 3막이 시작되었을 때도 그랬었다.


*2막의 무대인 까페 모무스에서 등장하는 무제타. 보통 "무제타의 왈츠"로 알려져 있는 "Quando men vo"를 부르면서, 자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지 보는 사람마다 다 넋을 잃고 쳐다보며 정신을 못차린다고 한다. 그런 무제타의 말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 연인 마르첼로. 2008년도 공연을 녹화한 동영상이지만, 18일날 본 공연과 같은 프로덕션 이다. 무제타의 저 빨간색 의상과 까페 모무스를 감싸던 화려한 오렌지 빛 조명은 1막과 4막의 창백하고 정적인 분위기와 대비되었다.(Youtube Cr: Onegin65).


홍혜경씨는 목소리는 정말 곱고 맑다. 음색은 청아하고 표현은 순수하고 프레이징은 유려하다. 사랑에 빠졌다 폐렴으로 죽어가는 미미역에 딱이다. 안나 네트렙코의 목소리가 조금만 더 가볍고 밝은 음색이었다면 아마 홍혜경씨 목소리와 비슷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50이 넘은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정도로 마치 20대 소녀의 목소리와 같은 울림을 낸다. 

*"라보엠" 중 "내 이름은 미미"(Mi chiamano Mimi). 방에 촛불이 꺼지는 바람에 옆집에 불 빌리러 간 미미는 로돌포와 처음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지는데, 바로 이 노래가 미미가 자신을 소개하며 통성명 하는 장면이다. 유툽에서 메트 오페라 클립들을 찾아보니 이번 시즌에 홍혜경씨가 미미를 연주한 라이브 동영상은 안 보이고 대신 한국에서 공연을 녹화한 듯한 클립을 찾았다. 모든 연주자들이 다 그렇겠지만 홍혜경씨 목소리를 실제로 들었을 때가 훨씬 좋은 듯. 정말 깨끗하고 맑아서 마치 호수를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Youtube Cr: Seungtaik)


뉴욕타임즈에 리뷰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20일날 포스팅되었다. 홍혜경씨에 대한 평이 아주 좋다. 역시나... 알고보니 메트에서 50번이 넘게 미미를 공연한 베테랑이었다. 아래는 뉴욕타임즈 기사 링크.

http://www.nytimes.com/2011/11/21/arts/music/la-boheme-at-the-met-life-in-zeffirelli-style-review.html?_r=1&ref=music

뉴욕타임즈 기사 중 홍혜경씨에 대한 부분과 그 번역이다. 이날 내가 들었던 것과 거의 일치하는 평이다. 절제된 제스쳐와 맑은 목소리로 인해 청순하고도 소녀같은 미미 캐릭터가 창조되었다.

"Hei-Kyung Hong stole the show as Mimi, a role she has sung more than 50 times at the house since 1987: a reliable mainstay amid the starrier names that have come and gone. Almost a quarter-century after her first Met Mimi, Ms. Hong sounded fresh and radiant on Friday, her singing distinguished by beautiful phrasing and refined pianissimos. She was believably girlish as the sickly seamstress, offering an affecting interpretation that avoided consumptive clichés like excessive coughing and other stock gestures."

"홍혜경은 1987년 이래 메트에서 50번이상 노래한 역할인 미미를 맡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태 메트를 거쳐간 더 유명한 스타들 사이에서도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가수이다. 메트에서 미미를 처음 부른지 거의 4반세기가 지났어도 홍혜경은 여전히 신선하고 빛나는 소리를 이날 들려주었다. 그녀의 노래는 아름다운 프레이징과 정제된 피아니시모로 빛났다. 병약한 재봉사(극중 미미의 직업)를 맡은 그녀는 정말 소녀같았다. 폐결핵 환자임을 보여주는 클리셰인 지나친 기침이나 여타의 상투적 제스쳐는 배제한 채, 깊은 연민과 감동을 불러오는 해석을 보여주었다."

이날 공연이 끝나고 누군가가 무대를 향해 던진 꽃다발 두개를 안고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던 디바, 홍혜경씨를 다음 시즌에서도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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