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8, 2011

새로나온 책-"희랍어 시간"

인터넷에서 신간 코너를 검색하다 발견한 책, "희랍어 시간"이 무지 궁금해졌다. 우선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왠 그리스어? 어학책인가 하다가 장르가 소설임을 알고나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학술적 목적 이외 실생활의 소통 도구로서는 기능은 그다지 크지않은 그리스어를 주제로 하는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리스어가 영어나 불어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어나 중국어처럼 비즈니스 관련해서 각광받는 언어도 아닌데..그리스인이 아니면서 그리스어 배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전학(Classical Studies), 고대철학, 신화, 역사, 미술 전공자인데 한국 작가가 특이하게 그리스어 수업을 소재로 해서 소설을 쓰다니 혹시 작가가 독일에서 그리스 비극같은 고대문학 전공하고 왔나하는 생각이 들어 이력을 읽어봤더니 그건 아닌거 같았다.

두번째로, 책 표지가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19세기 영국의 풍경화가 터너(Turner)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분명한 경계선이 흐려진 채 희미하게 보이는 대상의 형태, 습기를 머금은 대기를 나타나는 뿌연 수증기, 채도가 낮은 색상이 지배하는 책 표면은 터너의 "폭풍"(Snow Storm)과 흡사 비슷해 보였다. 터너의 그림은 사물의 형태가 해체되고 뭉게져서 결국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전환기적 면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형태가 희미하게 어렴풋이 감지되는 상태이되 아직까지 완전히 구상의 차원을 벗어난 것은 아닌 그런 중간적인 위치이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희랍어 시간" 속 주인공들의 중간자적, 전환기적 정체성과 혹시 관련이 있지 않을지? 아니면  뭔가 다이나믹한 일이 곧 벌어질 것 같긴한데 아직까진 흐릿하게 보일 뿐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포착되진 않은 상태이기에 기대감과 긴장감,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심리적 효과를 내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왼쪽은 윌리엄 터너(Turner)의 "Snows Storm–Steam Boat off a Harbor’s Mouth Making Signals in Shallow Water"이고 오른쪽은 소설 "희랍어 시간"의 겉표지. 두 이미지가 묘하게 닮은 것으로 느껴진다.

세번째로, 그리스어 관련된 몇가지 에피소드들이 기억났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지난 여름 나의 보스이신 T선생님께서 그리스어 사전에서 "methesis"(참여, participation)라는 단어에 대해 찾아오라는 과제를 내리셨다. 그리스어는 영어알파벳이랑 다른 철자를 쓰기땜에 당시 위키페디아를 검색해 그리스어 철자와 영어철자가 어떻게 매치되는지를 봐가면서 난생 첨으로 그리스어 사전에서 단어 찾았던 기억이 난다.


*보스 선생님의 부탁으로 처음 찾아본 그리스어 사전에서 복사했던 일부분. 화살표가 가르치는 단어가 영어식 철자로는 "methesis"라 표기된다. 

네번째로, 그리스어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그리스어와 더불어 학술적인 의미가 더 강한 라틴어가 생각났다. 예전에 학부때 기초 라틴어 한 학기 배웠었는데 고대언어라 그런지 영어나 독일어에 비해 확실히 격변화도 많고 복잡했던 기억이 난다. 허나 라틴어 배우고 나니 영어나 독어 단어력을 늘리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고, 유럽의 대학 도서관이나 오페라 하우스 외관에 쓰여진 라틴어도 조금씩 이해가 되었던 것 같다. 당시 수업을 맡으셨던 강ㅅㅈ 선생님도 참 좋았었는데 지금은 모교 철학과 교수로서 고대, 중세 철학을 가르치고 계신 듯.

뜻하지 않게 본 책 한권의 제목과 표지가 여러가지 단상과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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