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25, 2012

베르디 “Aida”-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베르디 “Aida”-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초연: 1871,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

대본: Antonio Ghislanzoni

지휘: Marco Armiliato

람피스: James Morris

라다메스: Marcelo Alvarez

암네리스: Stephanie Blythe

아이다: Violeta Urmana

프러덕션: Sonja Frisell

무대 디자인: Gianni Quaranta (영화 “전망 좋은 방” 미술 감독)

2월 16일날 학교에서 수업 마친 후 메트 오페라에 아이다를 보러갔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개선행진곡에 진짜 코끼리와 말이 등장하며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준다고 하는지라 내심 기대가되었다. 대규모의 합창 장면, 개선행진 시 들어왔다 나가는 긴 행렬들, 거대한 신전,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거대한 돌무덤 등 베르디의 오페라 중 이와같은 압도적인 무대가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작품이 바로 “아이다”이다. 바로 이런점 때문에 베로나의 콜로세움같은 거대한 야외극장은 아이다 공연을 위한 비쥬얼적으로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역시나…화려한 스펙터클 하면 세계 어느 오페라 하우스를 압도하고도 남을 메트답게(그만큼 다른 극장에 비해 예산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 정말 화려하긴 했다. 기대했던 코끼리는 안나왔지만 말은 제법 나왔다. 헌데 연주도중 말이 자꾸 화난 듯이 앞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오케스트라로 뛰어든다거나 가수들을 공격한다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조마조마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무대에서 심통부리는 듯한 말을 보니 차라리 코끼리가 빠진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을 등장시키는 장면이 나쁘진 않지만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동물 특유의 야성적 본능을 누르게끔 한다는 점-말도 비록 인간적으로 윤리적으로 다뤄진다 할지라도-이 그리 달갑게 보이지는 않는지라, 코끼리가 안나오는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무대 연출은 영화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의 미술을 담당했던 지아니 콰란타인데, 평소 메트 오페라의 전반적인 경향에 걸맞게 상당히 고전적이고 그래서 시각적으로 편안하고도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굳이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실제 의상과 자연 환경이라기 보다는 그 나라들을 생각했을때 우리가 떠올리는 "분위기" 및 "상상된 이미지"에 부합하는 무대였다.

베르디가 오텔로를 작곡한 후 카이로 오페라 극장 개관을 기념해 위촉 받은 작품인만큼 베르디 특유의 후기 음악적 어법이 곳곳에 드러난다. 초기 오페라에서 보이는 쿵짝짝 리듬 및 섹션별로 명확하기 나눠지는 것이 사라지며 장면들이 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이 명확한 종지점과 구분을 피한채 끝없이 이어지는 바그너의 음악적 방향으로 베르디 또한 따라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Art of Transition”).

성악가들에 대해 말하자면, 이날 공연은 “아이다”가 아니라 “암네리스”였다. 스테파니 블라이트의 압도적으로 큰 성량이 나머지 모든 성악가들을 다 죽여버렸다 할 정도로 노래 실력 및 무대 존재감에 있서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암네리스가 사랑하는 라다메스를 맡은 알바레즈의 노래는 평소에 비해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해였다. 너무 막강한 암네리스를 만나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등장해서 처음 부르는 entrance aria라 할수있는 “Celeste Aida”에서도 연인을 향한 애틋하고 다정한 느낌 보단 불안하고 뭔가 찌질해보일 정도였다. 다소 비실비실했던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맡은 비올레타 우르마나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우르마나는 전반적으로는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시원한 가창을 들려주진 않았다. 에티오피아 공주인 아이다는 적국인 이집트에 인질로 잡혀와서는 그곳의 장군인 라다메스와 사랑에 빠지는, 조국과 연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번민하는 역할이다(이 점에 있어 자신의 가문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공주의 남자”의 세령이와 상당히 비슷한 처지다). 그런 마음의 아픔 및 갈등이 노래 전반적으로 느껴져야는데, 암네리스의 무지막지한 “미친 존재감”이 아이다를 그만 가려버렸는지 절절함이 호소력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실 "아이다"는 이 세 인물의 사이에 흐르는 긴장 관계 및 심리전이 극을 이끌어간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페라의 주된 스토리 축인 삼각 관계를 이루는 아이다, 라다메스, 암네리스 사이에 팽팽한 실이 당겨진 듯한 긴장감이 시종일관 감지되어야 한다. 즉,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사회적으로 서로 허락되지 않은 관계이기에 그들의 사랑을 항상 숨겨야 하며, 혹시나 들킬까하는 조마조마함이 늘상 뒤따른다. 아이다와 암네리스는 서로 연적 관계인데, 둘이 같이 있을 때면은 암네리스는 질투심과 복수의 감정, 아이다는 불편함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낀다. 암네리스와 라다메스는 후자의 전자에 대한 일방적 집착과 사랑이 급기야는 애증으로 변하게 된다. 허나, 암네리스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한 나머지, 세 인물 사이의 이러한 드라마적 긴장의 밸런스가 깨져버렸고 따라서 암네리스가 왜저리 자기보다 못해보이는 남자에게 집착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기회가 있다가 카우프만의 강렬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라다메스 장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이날 블라이트를 제외한 성악가들에게서 뚜렷한 느낌을 받지 못했던 반면, 감동적이었던 것은 오히려 베르디의 음악과 드라마였다. 아주 오래전에, 한국에서 “아이다”를 본 기억이 있긴 하지만 그때 베르디의 음악이 특별히 감동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메트의 라이브 공연에서 오래간만에 들어본 아이다 음악은 정말 완전 다르게 다가왔다. 초기 작품에 비해 훨씬 박진감있고 세련되고 깊이있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단순히 오케스트라 반주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는 들리는 관악기 또는 하프의 효과적인 사용, 앞서 말한 “Art of Transition”의 면모, 듀엣과 앙상블에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몰아가는 긴장감은 가히 베르디의 음악적 어법의 완성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불어 라다메스, 아이다, 암네리스 누구하나 단편적인 1차원적 캐릭터가 아니라 조국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름대로 복잡한 심리를 가진 인물들이다 (이점에 있어, 같은 후기 작품으로 분류되는 “오텔로”나 “돈 카를로”또한 비슷하다). 그러한 갈등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아이다며, 이후 라다메스 또한 같이 도망가자는 아이다의 간청에 정말 조국을 떠날 것인지 갈등하게 된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 표독하던 암네리스 또한 라다메스를 죽이기로 한 판결을 후회하며 혹시 다시 뒤집을 수 없을까 하며 고뇌하는 장면이 나온다.

평소에 무덤덤하게 생각했던 “아이다”가 이번 메트 실황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조만간 프레니(아이다)/발차(암네리스)/카레라스(라다메스)/카라얀(지휘) 음반을 주문해서 듣고 또 들어야겠다.


*예전에 분석시간에 마크 선생님이 과제로 내어주셨던, 라다메스와 암네리스의 듀엣. 조국과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이다는 전쟁 포로로 잡혀온 자신의 아버지인 아모나스로 왕에게, 라다메스를 통해 알아낸 군사기밀을 말해버리는데 이를 암네리스가 목격한다.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결국 잡히고, 여전히 라다메스에 대한 연정을 끊지 못한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에게 아이다를 버리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지만 라다메스는 단호히 거절한다. 동영상은 암네리스가 라다메스를 회유하지만 라다메스가 거부하고, 이에 암네리스가 격분하는 바로 그장면이다.

이 유툽 클립은 당시 숙제하기 위해 찾아본 것중 가장 좋았던 것으로, 빈 국립 오페라의 반주로 도밍고와 아그네스 발차가 노래하는 연주이다. 동영상에서 발차는 이미 전성기를 훨씬 넘어선 나이의 할머니로서 고음에선 팔세토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연인을 위협함과 동시에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갈구하는 나약한 암네리스의 모습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그려낸다. 연주에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와 완벽한 표현은 목소리의 쇠퇴를 잠재우고도 남는다.



Tuesday, February 14, 2012

벨리니의 "Norma" 중 "Casta diva" (순결한 여신), 그리고 영화 "The Iron Lady"(철의 여인)

어제 보고 온 영화 "The Iron Lady"에 "Casta diva"(순결한 여신)이 나왔다. 워낙 좋아하는 곡이라 반가웠음과 동시에, 영화의 컨텍스트 내에서 이 아리아가 어떤 메타포를 가지는 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페라 중 이노래는 드루이드교를 이끄는 여자 사제인 노르마가 신성한 의식을 집행하기 위해 등장하며 부르는 아리아(entrance aria, 보통 "cavatina"라고 한다)이다.

영화에서 "Casta diva"는 두 번 나온다. 한번은 대처 총리가 젊은 시절 남편이랑 데이트 하면서 보던 오페라가 벨리니의 "Norma"였다. 실제 오페라 무대 모습은 안나오고(당연히 런던의 코벤트 가든일 것이라는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커플이 관객석에 앉아 미소 지으며 좋은 시간을 가지는 장면에 이 아리아가 OST로 들린다. 두번째는 대처 총리가 "박수칠 때 떠나라"는 심정으로 총리직을 사임하며 다우닝가 10번지의 자택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에서 또한번 이 노래가 나온다. 그 많은 오페라 중 왜 하필 "노르마"를 선택했을까? 단순히 이 아리아가 듣기에 좋고 유명하다는 점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가사를 보자면,

순결한 여신이시여, 그대의 은빛이
신성하고도 오래된 나무들을 비추는 것처럼
그대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려짐 없이 우리에게 드러내 주옵소서.
여신이시여
그대의 불타는 영혼을 가라앉히소서.
또한 그대의 대담한 정열을 진정시키소서.
그대가 하늘에서 지배하는
땅에 평화를 전해주시옵소서.

Casta Diva, che inargenti
queste sacre antiche piante,
a noi volgi il bel sembiante
senza nube e senza vel...
Tempra, o Diva,
tempra tu de’ cori ardenti
tempra ancora lo zelo audace,
spargi in terra quella pace che regnar tu fai nel ciel...

이는 노르마가 하늘에 기도하는 전형적인 "기도" 아리아이다. 노르마의 사제라는 위치, 따라서 신성함과 권위가 전면에 드러나는 장면이며 오페라를 통틀어 노르마를 가장 숭고하고 우아하게 조명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밝혀질 노르마의 숨겨진 사실들 (법을 어기고 비밀 결혼 및 아이들까지 두고있음. 게다가 남편은 적국의 장군)을 생각해볼 때 참으로 아이러니한 아리아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아리아가 불려지는 순간, 노르마는 이 세상을 초월해보일 정도로 가장 신성하고 숭고한 여신이 된다. 진정으로, 노르마에 의해 불려지는 노르마를 위한 아리아이다. 영화는 이 아리아를 택함으로서 오페라 캐릭터로서의 노르마가 영화속의 대처라는 인물에도 투영되어 보이게끔 한다. 영화의 컨텍스트와 노르마의 컨텍스트를 생각해본다면,

1. 노르마는 드루이드교를 이끄는 지도자이다. 최고의 여사제장이며 로마의 탄압에 대항해 부족의 결속과 단결을 책임지며 권위와 카리스마로 이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 대처의 "총리"로서의 역할과 통하는 부분이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극중 노르마는 은근히 연정에 많이 휘둘리는 인물이다. 드루이드족들이 얼른 로마를 치자고 할 때 노르마는 폴리오네와 아이들 생각에 다른 이유를 들어 아직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폴리오네를 죽일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쌓인 정 및 아이들 때문에 행하지 못한다. 그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또한 죽여버리려고 시도했지만 (이렇게 되면 "노르마"가 아닌 "메데아"가 된다) 차마 실천하진 못한다. 이에 반해 대처는 영화에서 훨씬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자식이나 남편보다는 정치가 언제나 우선 순위이며 이에 대해 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2. 노르마는 그러나 정치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로마의 장군인 폴리오네와 내연관계를 이루어 두 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노르마가 사제직을 수행하거나(사제는 결혼금지) 철전지 원수의 나라인 로마에 대항하는데 명백한 걸림돌이자 오점이다. 노르마가 자신을 배신한 폴리오네를 죽이려 칼을 들이대는 순간에도(이는 자신의 순정을 농락한 배신자를 처벌하는 의미 외에 적국의 장군을 죽인다는 애국적인 행위라는 두가지 명분을 가진다), 마지막에 자신의 죄를 만천하에 밝히고서 화형장작 위로 스스로 오르려는 순간에도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바로 이 아이들이다. 즉, 끝내 아이들의 아빠라는 점 때문에 폴리오네를 찌르지 못하며, 장작에 오르기 전 자신의 아버지인 오로베소에게 제발 아이들은 죽이지 말고 잘 돌봐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이 마지막 장면에선 안 울수가 없다ㅠㅠ).

이는 겉보기에 위엄과 권위로 다가오는 지도자라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있는 한 어머니이자 아내로서의 역할을 벗어날 수 없었음을 오페라의 컨텍스트를 빌려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지. 영화에서도 대처가 매달리는 아이들을 무시한 채 매몰차게 떠나는 장면, 딸이 운전면허 딴 것을 자랑할 때 같이 공감하며 좋아하는 모습이 그리 드러나지 않는 점(국가적 대사에 비해서는 너무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의 환영이 나타나 대처에게 당신이 정치하느라 나와 아이들은 항상 뒷전이었다고 소리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는 모두 국가의 지도자 vs 가족(아내이자 어머니)이라는 대결구도로 볼 수 있는 역할 갈등들이다.

3. 오페라의 엔딩에서 결국은 폴리오네와의 관계를 고백한 노르마는 명예로운 퇴장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적국의 장군과 내통한 배신자이자 아이들에게 불명예스러운 어머니로 남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어 속죄의 마음을 제대로 보이겠다는 결정이다. 대처 총리의 경우 영국병을 치유하는 와중에 부딪혔던 엄청난 반발이 축적되며 보수당에 대한 반감이 커가던 와중, 결국은 대외적인 분위기를 받아들여 사임을 결정한다. 굳이 선거에 나가 패배자라는 오명을 얻느니 여태까지 쌓아온 업적(영국병 치유, 냉전 종결, 아르헨티나 및 포클랜드 문제의 성공적 처리)을 바탕으로 영국의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강철같은 카리스마의 리더쉽을 보여준 성공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길 선택한 대처 총리. 물론 노르마와 같은 극단적인 결말은 아니라 할지라도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며 명예롭게 퇴장한다는 점에선 두 사람이 닮아있다.

오페라 속 캐릭터로서의 노르마는 지도자, 아내, 엄마라는 다양한 역할을 가지며 이는 끊임없이 갈등 관계를 만들어낸다. 대처 총리의 위차나 역할도 노르마가 처한 입장 및 상황과 완전 일치하진 않지만 겹치는 부분이 어느정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리아는 영화 속에서 적절한 음악적 메타포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Casta diva"에 대해 다시 유툽 클립들을 찾아보았다. 영화에서는 칼라스 목소리가 나왔던 것 추측하는데, 나의 best choice는 카바예, 플레밍, 게오르규 등이다. 칼라스도 나쁘진 않으나 목소리가 신성한 여신이라하기엔 너무 "인간적"이다. 그중 특히 긴 호흡과 레가토 선율, 서정적 표현력, 그리고 깨끗한 음색이 특징인 카바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명연주이다. 이 이상 더 완벽한 연주를 찾긴 힘들다 할 정도로 호흡 테크닉 및 긴 프레이징이 압도적이다. 1974년 프랑스 오랑쥬 페스티벌 실황인데 당시 야외공연 때 불던 바람으로 인해 휘날리는 옷자락은 오히려 더 멋있는 분위기를 내는 것 같다. 말그대로 벨칸토의 여신이 부르는 여신 아리아이다.

Saturday, February 11, 2012

예매의 중요성 및 "꺼진불도 다시보자" 교훈

오늘 그동안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던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 생중계를 보러 타임 스퀘어의 극장에 갔으나 예상을 뒤엎고 매진. 극장에서 해주는 오페라 보러갔다가 매진된 적은 처음이다. 장장 6시간 반이라는, 다른 오페라에 비해 적어도 두배가 넘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매진이라니..정말 놀랍다. 혹시나 해서 유니온 스퀘어의 극장에도 가봤으나 거기도 매진.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와서 여태까지 찍어두었던 공연들 다시 찾아 다 예매하는 중이다.

5월달에 "신들의 황혼"을 메트에서 라이브로 볼 예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극장의 와이드 스크린으로 보면서 미리 꼼꼼하게 미리 예습하려는 계획은 아쉽게도 물거품이 되버렸다. 나중에 DVD가 나오면 닳을때까지 돌려봐야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메트에서 배달되어 온 "반지" 사이클의 티켓들을 다시 확인해보았는데, 달력에 적어둔 날짜와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 예매할 때 second choice로 선택했던 패키지가 당첨되었는데 여태까지 first choice 가 당첨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마터면 1년동안 학수고대한 공연을 거금주고 예매해놓고 완전 놓칠뻔 하였다. 예매의 중요성 및 배달된 티켓날짜 다시 확인하기의 교훈을 확실히 얻었다.

오늘 예매한 공연 중 하나는 5월 18일 카네기홀에서 열릴 샤를 뒤뜨와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협연이다. 폴리닌 2008년도 가을에 열린 독주회 이후 처음인데, 올해 이번 협연 외에도 따로 독주회 일정이 잡혀있다. 더불어 라벨의 "다프니스 모음곡"(전곡) 또한 아주 기대중이다. 구불구불 아라베스크 리듬 및 섬세한 음색이 전면적으로 두드러지는 곡이다.

Performers
The Philadelphia Orchestra
Charles Dutoit, Chief Conductor
Maurizio Pollini, Piano
The Philadelphia Singers Chorale
David Hayes, Director

Program
GLINKA Overture to Ruslan and Ludmilla
CHOPIN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RAVEL Daphnis et Chloé (complete)

다른 하나는 5월 24일날 역시 카네기홀에서 열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의 콘서트 연주이다. 최고의 바그너 가수 중 한명인 니나 슈템메가 살로메 역을 부를 예정이다. 힘있고 카리스마 있는 음색에 고귀함과 우아함까지 겸비한 목소리의 슈템메. 뉴욕에서 연주가 있다면 프로그램, 장소 불문하고 무조건 가서 보고 싶은 성악가 중 한명이다 (다른 두명은 카우프만과 에바-마리아 베스트브뢱).

폴리니와 더불어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키신의 5월 23일날 뉴욕필과 협연 또한 아직 예매는 안했지만 눈에 띄는 연주이다(학교에 돌아다니는 학생티켓이 아직 남아있으면 좋겠다). 그리그와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여태까지 키신은 한번도 라이브로 들은적이 없는데...평소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정석의 연주를 들려주는 키신의 연주회도 많이 기대가 된다.



Friday, February 10, 2012

신간-"Quiet" by Susan Cain

Quiet by Susan Cain - Random House

뉴욕 타임즈에서 책 리뷰 섹션을 읽다가 발견한 책인데...미국같이 외향적, 진취적, 자신감 충만한 성향을 훨씬 가치 있게 평가하는 나라에서 이와같은 책이 나오다니 다소 놀랍다.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1. 무조건 외향적이라고 다 좋은게 아니다. 머리보단 입이 먼저 앞서가며, 알맹이 없이 쓸데없이 말만 많은 요란한 빈수레가 알고보면 얼마나 실속없는 빈껍데기인지, 2. 내성적 사람이라고 멍청하고 독창성도 결여되고 사회적 교감력이 떨어진다고 성급히 판단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성향의 사람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내공을 갖추고 있으며 자기 개발 및 창조적인 것에 힘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말많고 자신감이 넘쳐 오히려 자만으로 보이는 사람이 조용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간주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 또는 미국의 주도적인 문화에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오페라 리뷰 읽으러 들어갔다 우연찮게 발견해서 읽게된 뉴욕타임즈 리뷰.
http://www.nytimes.com/2012/02/12/books/review/susan-cains-quiet-argues-for-the-power-of-introverts.html?pagewanted=2&ref=books

이 리뷰에 따르자면 책에서 발견되는 문제점이 두개인데, 첫번째는 "내향적"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너무 넓은 나머지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가치는 다 갖다 붙인거 같다는 것이다. 즉, 케인이 정의하는 내향적 성격의 사람은 다음의 특징들을 가진다.

"관조적이고, 지적이며, 책이나 학문을 좋아하며, 잘난척 하지 않으며, 예민하며, 사려깊으며, 섬세하며, 내성적이며, 내부 지향적이며, 부드럽고, 조용하고, 겸손하고, 고독을 지향하며, 부끄러움을 타며, 위험을 피하고자 하며, 민감하다"

“reflective, cerebral, bookish, unassuming, sensitive, thoughtful, serious, contemplative, subtle, introspective, inner-directed, gentle, calm, modest, solitude-seeking, shy, risk-averse, thin-skinned.”

리뷰어의 말대로 좋은말은 다 끌어다 모은 감이 없진 않으나,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내향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일면들을 정확하게 보고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은지. 사람의 성향이란게 단 한 단어로 정의될 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내향적임"을 설명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저렇게 많은 단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더불어, 책에서 재평가를 하고자 하는 내향적 성향이란 단순히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고, 게으름에 가까운 무기력함과 혼동되어서는 안되는데, 그러기 위해선 "introvert"(내향적)이라는 단어가 미처 포함하지 못하는 긍정적 의미를 보완해 줄 다른 많은 단어들이 필요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새로 보자고 주장하는 내향적 성격이란 단순히 조용하다는 것을 넘어 지적인 능력, 사회적인 배려심, 인간에 대한 예의, 신중함과 같은 사고의 방법 및 행동의 양식에 까지 적용되기 때문이다.

리뷰어가 지적하는 두번째는 문제점은,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존심이 낮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특히 두번째 사항 관련해서 리뷰어는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 또는 비즈니스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내향적 사람들의 자존심이 낮을지도 모르나 실험실 또는 연구에 몰두하는 내향적 성향의 사람들은 오히려 만족할 정도의 높은 자존심 갖고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나 또한 이 두번째 비평에 상당히 공감한다. 아무래도 혼자 책읽고 실험하고 생각하며 논문 쓰기에 정진하는 학자들의 경우 자의든 타의든 내향적 삶을 살 가능성이 낮지 않은데, 이들의 일에 대한 만족감과 자존심은 결코 다른 직종에 비해 낮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개강하고 학교 수업과 강의로 너무 바쁜 나머지 지금은 도저히 읽을 시간이 없고 방학하고 아마존 킨들로 한번 봐야겠다.

Thursday, February 9, 2012

바그너의 "Götterdämmerung" 프리뷰-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지금 하고 있는 바그너의 오페라의 "반지" 시리즈 중 4번째 작품인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 공연이 이번 토요일, 미국 전역의 영화 극장에서 라이브 생중계로 방영될 예정이다. 여태까지 봐웠던 메트의 새로운 "반지" 시리즈 연출이 너무나도 맘에 들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는지라 이번 마지막 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예매해서 볼 예정인 메트의 "반지" 공연은 5월 초인데, 그때까지 트레일러 및 극장 상연이라도 열심히 보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메트 오페라에서 올린 트레일러. 이번 "반지" 시리즈 프로덕션의 대표적 상징 아이콘인 강철판자가 여전히 무대를 채우고 있다.  

이 오페라 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대목은 운명의 세 여신들(Norns)이 실을 꼬으다가 갑자기 실이 끊어지는 장면이 나오는 프롤로그 부분이다. "신들의 황혼"의 첫 시작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반지"의 원래 주인공이었던 보탄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각각 알토, 메조, 소프라노가 노래한다. 이 부분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1. 일단 바그너의 음악 자체가 너무나도 멋있고 (오프닝에서 관이 연주하는 Eb단화음에서 Cb장화음으로의 진행(bVI 또는 변형이론에서 Leittonwechsel transformation)은 세상의 무너짐이 조만간 일어날 것같은 불길하면서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2. 각각 다른 음역의 세 여성 성악가들이 만들어내는 다크 사운드의 하모니를 듣는 묘미도 좋고, 3.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뭔가 일이 터질것 같은 분위기가 지배하는 무대 위 긴장감과 스릴, 4. 작곡자이자 대본을 만든 바그너가 설정한 메타포적 의미, 즉 운명의 여신들이 보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실이 끊어지는 것을 보여줌으써 향후 그가 지배하는 신의 세계(발할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극적인 은유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맞물려 대단원을 향한 서막을 완벽하게 이루어낸다. 

아래는 예전에 이 프롤로그 부분을 다룬 논문을 읽으면서 찾아본 유툽 동영상 중 성악적으로 제일 좋았던 클립이다. 어두우면서 힘있는 음색의 저음 여성 목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 타입이기도 하다. 바그너의 오페라 중 찾아보면은 뛰어난 여성 앙상블을 담고 있는 장면이 많다. 운명의 여신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라인의 황금" 시작 및 "신들의 황혼" 3막에 나오는 라인 처녀들의 3중창, "발퀴레" 3막의 오프닝에서 8명의 발퀴레가 여전사의 카리스마와 포스를 내뿜으며 등장하는 장면, "신들의 황혼" 1막 3장에서 발트라우테가 반지를 버리라 설득하고 브륀힐데가 완강히 거부하는 듀엣 장면 등은 여성 목소리로 이루어진 앙상블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주옥같은 예들이다.  


*바이로이트 실황(카일베르트 지휘) 녹음 음반. "신들의 황혼" 첫 부분. 예전에 "Schenker and the Norns"라는 논문의 발표 준비를 하면서 유툽에서 검색했던 녹음 중 이 카일베르트 실황이 가장 좋았었다. 어두우면서 카리스마있는 세 목소리가 실어나르는 불길한 징조, 운명과 숙명, 멸망의 예언은 "라인의 황금" 및 "지그프리트" 중 에르다(대지의 여신)가 말했던 것들과 궁극적으로 의미가 상통한다.  




Friday, February 3, 2012

바그너의 "Rienzi"-Opera Orchestra New York

지난 일요일날 링컨센터의 Avery Fisher Hall에서 열린 바그너의 "리엔치"의 콘서트형식(Konzertante) 연주를 보고왔다.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인데다 거의 연주가 되지 않는 작품이기에 이렇게 콘서트 형식으로나마 무대에 올리는 기회는 아주 드문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후기의 "music drama"에서 보이는 음악적 완성도 및 대본의 효율성은 확실히 떨어졌다. 프랑스 Grande opera영향을 받아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음악 및 대규모 스펙터클의 추구는 바그너가 베버 이후 독일의 오페라적 전통의 계승자라기보다 마이어베어나 베를리오즈의 노선에 맞추고자 애쓰고 있었음을 증명하였다. 대본 또한 독일어에서 영어로의 번역 문제 때문인지 몰라도, 공산주의 전당대회에서 쓰일법한 선동구호로 점철되어 있었기에 딱히 감동적이고 가슴깊이 새길만한 라인이 발견되진 않았다. 바이로이트에서 왜 "리엔치"가 아직도 한번도 공연되지 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작품적인 약점에 반해, 연주자들 중 특히 주역인 메조 소프라노(Geraldine Chauvet)와 소프라노(Elizabete Matos)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리엔치가 자주 공연 안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메조 역을 제대로 불러낼 성악가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인물들에 비해 압도적인 긴 분량, 강렬한 표현과 음색, 서정성 등 성악가가 갖추어야 할 보든 기교와 힘, 감정적 표현이 막대하게 요구되는 역할이었는데 쇼베는 너무나도 이 역을 완벽히 소화, 관객들에서 집중적인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냈다. 보면서 든 생각이 이렇게 노래 잘하고 실력있는 가수가 왜 여태 메트에 서지 않은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날 최고의 발견은 바로 쇼베라 할 수 있다.

마토스는 재작년에 메트에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에서 봤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그리 기억할만한 인상을 받진 못했다. 허나 이번에 보니 워낙 성량도 크고 힘이 넘치는 지라 바그너 및 베르디나 푸치니의 강력한 여성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 워낙 화려하다보니 박스석에서 브라스 앙상블이 연주된다거나, 중간에 어린이 합창단 또는 남성 합창단이 청중석 뒤에서 입장한다거나 하는 시각적으로 주목을 끌만한 이벤트들이 작품 중간 중간에 있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바그너가 여전히 프랑스적 전통 아래 있는 시기이자 이탈리아 벨칸토의 흔적까지 간간이 보이는지라 이후 완숙한 바그너만의 독창적 어법에서 보이는 깊이와 진중성은 다소 결여된 것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