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이탈리아 사실주의(verismo) 문학 및 오페라를 공부함에 있어 필수적으로 읽어야 할 작가가 지오반니 베르가이다. 베리즈모 오페라의 대표격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시골 기사)의 원작자이기도한데, 이번에 베르가의 대표작인 "말라볼리아가의 사람들"이 번역되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제약(신분 및 상황) 및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다소 우울한 내용이다. 말라볼리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 경향의 작품들이 다들 즐겁게 낭만적으로만은 읽을 수 없는 내용들이긴 하다...
아무튼, 그동안 베리즈모 오페라 관련한 논문에서 줄창 등장하던 베르가의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니 한번 읽어보고픈 마음이 생긴다. 책 소개 및 서평 링크.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4623193#tab_review
Wednesday, January 1, 2014
Sunday, November 25, 2012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푸치니의 "투란도트"(Turandot)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에서 오늘 라이브 생중계로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방영하였다. 6년전에 뮌헨을 뜬 이래 독일 오페라나 독일 성악가들이 보일 때면 어김없이 같이 떠오르던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 출구 없는 오페라의 블랙홀로 빠지게 된 것도 그곳을 열심히 드나들며 몬테베르디부터 쇤베르크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원없이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서양이 막고 있어 직접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터넷으로나마 예전의 설레고 감동적이었던 경험을 다시 할 수 있게 참으로 기쁘다. 이 좋은 공연을 회원가입이나 돈 받는 것 없이 전적으로 무료로 보여준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오늘 본 "투란도트"는 이번 시즌 메트에서도 하고있는 작품이다. 보수적인 미국 청중의 취향에 맞게끔 제피렐리의 클래식하고 화려한 연출이다. 이에 반해 바이에른의 연출은 미래주의, 사이언스 픽션이 컨셉이다. 이점에 있어선 주빈 메타가 지휘한 발렌시아의 "반지" 사이클과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이다.
바이에른 오페라의 "투란도트"는 시대적으로는 2046년, 빚더미에 올라앉은 유럽대륙이 중국에 넘어감과 동시에 유럽이 중국의 지배를 받는다는 설정이다. 의상이나 분장은 전통적인 "authentic"한 중국과는 거리가 멀고 스타워즈에 나오는 오리엔탈 풍(중국과 일본이 묘하게 섞여있다)이 주가되며 조명은 비닐이나 메탈 소재에서 나오는 번뜩이는 빛, 도시의 네온 싸인이 지배한다. 최신 트렌드에 발맞추어 비디오 프로젝션이 효과적으로 쓰이며 때때로 서커스적인 요소들도 가미된다. 예를들어 덤블링 묘기, 비보이들이 하는 것과 같은 현란한 춤,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있기, 피아노줄 타고 날라다니기 등은 마치 로버트 르파쥐의 "태양의 서커스"를 보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1막에서는 투란도트 공주에 대한 구혼자 중 한명인 페르시아 왕자가 사형당하는 장면에서는 높은 단상 위에 선 왕자의 몸 주위에 묶여진 끈을 통해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익숙한 거열형을 암시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2막에서 황제가 등장할 때 우리나라의 징 비슷한 악기들을 쓰는데 이때 카메라가 무대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석을 비춰줌으로써 이국적인 독특한 음향, 음색 효과에 대해서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는 점도 지적으로 보였다(카메라 잡는 사람이 확실히 음악에 대해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칼라프 왕자가 투란도트 공주의 수수께끼를 풀 때마다 비디오 이미지를 통해 빙하(이는 투란도트 공주의 icy princess를 표상한다)가 산산히 무너지는 것을 보여준 것 또한 효과적인 드라마적 장치였다. 동시에 높은 곳에 매달려있던 공주가 서서히 땅으로 내려오게 한 것도 공주의 차가움과 비인간성이 칼라프의 용기와 도전정신에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음을 공간적으로 잘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3막의 초반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칼라프 역의 이용훈 님이 멋있게 불러주었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노예소녀인 류(Liu)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무대인사 하러 나오신 이용훈님. 선배님 자랑스러워요!! 노트북을 찍은 것이라 사진 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전체적으로 최신의 연출경향(비디오, 서커스적 요소, 테크놀로지)을 모두 반영한 화려함과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무대였다. 가수들 노래또한 훌륭했으며 지휘자(마르코 아밀리아토)의 박력있는 해석 또한 무대 연출과 잘 부합하였다.
공연을 보고난 후 떠오른 생각은 바로 노예소녀인 류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비록 제목은 "투란도트"이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진정한 주인공은 류인 것으로 보였다. 칼라프와 그 아버지인 티무르를 위해 끝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최후에는 죽음으로써 투란도트에게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류. 이에반해 처음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투란도트 공주는 막판에 가선 정신적으로 칼라프의 용기에 굴복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류의 희생정신에도 감복하는 "수동적" 캐릭터로 결론나고 만다. 오페라 또한 류에 대한 찬양의 말로 끝나며("Liu, all goodness! Forgive us! [...] Liu! Poetry!") 그녀의 희생을 더 없이 숭고한 것으로 만드는 일종의 "제의"로 끝맺는다. 이쯤해선 마치 바그너의 "반지"의 최후를 장식하는 브륀힐데의 자기희생적 "제의"와 비교해서도 완전히 같진 않지만 어느정도 병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투란도트를 맡은 이레네 테오린과 함께 무대인사 중인 이용훈님.
시작은 투란도트였으나 끝에가선 류의 드라마로 끝나버린 오페라. 투란도트는 그녀를 존재를 정의하던 철의 장막이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며, 류는 노예소녀라 할지라도 결국엔 숭고한 대상으로 승화되기 위해 존재한다. 주연과 주연을 다루는 방식, 그 목표점을 향한 여정에 있어 푸치니의 이 두 여성 캐릭터 취급은 우리의 관습과 일상적 기대를 벗어나있다. 이는 아마도 푸치니가 "투란도트"를 끝까지 다 못쓰고 죽어버린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오페라를 끝까지 썼다면 투란도트와 류에 대한 이 어정쩡한 드라마적 긴장관계가 좀 더 부드럽게 조율되지 않았을까.
*투란도트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1막의 피날레이다. 류의 애절한 아리아인 "Signore, ascolta"로 시작해 칼라프의 "Non piangere, Liu"로 이어지며 마지막엔 세명의 대신들(핑, 퐁, 팡), 칼라프, 티무르, 류, 코러스가 함께하는 콘체르타토로 끝난다. 음악이 진행되면서 템포도 점차 빨라지고 분위기도 더 극적으로 변한다.
벨리니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Golden Age" (맨하탄 씨어터 클럽)
방금 뉴욕타임즈에서 발견한 연극에 관한 소식. 오페라 작곡가인 벨리니가 주인공이며 그의 마지막 작품인 "I puritani"(청교도들)이 파리에서 초연되는 것을 소재로 하고있다. 이탈리아 작곡가의 이탈리아 대본 오페라가 왜 굳이 파리에서 상연되는 것에 주목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지만 음악사, 특히 오페라사 책을 읽다보면 파리 무대는 당시 한자리 한다는 오페라 작곡가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시험대와도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19세기 전반, 오페라의 중심은 파리였다. 중앙집권식 정치 시스템하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그와 더불어 통제)를 받는 파리 오페라는 이탈리아나 독일 오페라 하우스에 비해 예산도 훨씬 많았으며, 숙련된 합창단, 프로페셔널한 무대제작진 등 당대 오페라 작곡가들이라면 꼭 일해보고 싶은 꿈의 무대였다. 비록 한 작품 올리는데 행정적으로 복잡한 절차 및 상대적으로 긴 제작 및 리허설 등의 과정이 수반된다 할지라도 그 완성도나 수준높은 무대효과에 있어서는 이웃 나라의 기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벨리니 이전에 이미 롯시니가 이탈리아에서의 성공적 커리어를 바탕으로 파리로 이주, 그곳에 정착하여 "모세", "오리 백작", 그리고 최후의 걸작이자 그랑 오페라(grand opera)로 분류되는 "윌리엄 텔"을 작곡한다.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또한 파리의 오페라 코미끄(opera comique)를 위해 쓰여진 작품이다.
벨리니는 대도시 또는 오페라적 전통이 강한 나폴리가 아닌, 상대적으로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시칠리섬 출신에다, 소심하고 질투심도 많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쪼잔한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시골 출신이라는 잠재적 열등감 및 화병 나기 쉬운 성격때문인지 명또한 길지 못해 34세라는 나이로 파리 근교에서 사망한다.
연극은 12월4일날 맨하탄 씨어터 클럽에서 시작할 예정이란다. 테렌스 맥낼리(마리아 칼라스를 다룬 "Masterclass"의 극작가이기도 하다)의 각본에 리 페이스(Lee Pace)가 벨리니역을 맡았다. 페이스는 작곡가 캐릭터를 좀 더 심도깊게 이해하기 위해 벨리니의 고향인 시칠리아를 방문했다고 한다. 음악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쪼잔하고 소심한 "인간적" 벨리니로 그려질 것인지, 아니면 벨리니의 "마지막" 작품의 첫날밤이라는 역사적 의의에 부합해 보다 "비범한 천재"로 그려질 지 사뭇 궁금하다.
19세기 전반, 오페라의 중심은 파리였다. 중앙집권식 정치 시스템하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그와 더불어 통제)를 받는 파리 오페라는 이탈리아나 독일 오페라 하우스에 비해 예산도 훨씬 많았으며, 숙련된 합창단, 프로페셔널한 무대제작진 등 당대 오페라 작곡가들이라면 꼭 일해보고 싶은 꿈의 무대였다. 비록 한 작품 올리는데 행정적으로 복잡한 절차 및 상대적으로 긴 제작 및 리허설 등의 과정이 수반된다 할지라도 그 완성도나 수준높은 무대효과에 있어서는 이웃 나라의 기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벨리니 이전에 이미 롯시니가 이탈리아에서의 성공적 커리어를 바탕으로 파리로 이주, 그곳에 정착하여 "모세", "오리 백작", 그리고 최후의 걸작이자 그랑 오페라(grand opera)로 분류되는 "윌리엄 텔"을 작곡한다. 도니제티의 "연대의 딸" 또한 파리의 오페라 코미끄(opera comique)를 위해 쓰여진 작품이다.
벨리니는 대도시 또는 오페라적 전통이 강한 나폴리가 아닌, 상대적으로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시칠리섬 출신에다, 소심하고 질투심도 많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쪼잔한 성격이었다고 전해진다. 시골 출신이라는 잠재적 열등감 및 화병 나기 쉬운 성격때문인지 명또한 길지 못해 34세라는 나이로 파리 근교에서 사망한다.
연극은 12월4일날 맨하탄 씨어터 클럽에서 시작할 예정이란다. 테렌스 맥낼리(마리아 칼라스를 다룬 "Masterclass"의 극작가이기도 하다)의 각본에 리 페이스(Lee Pace)가 벨리니역을 맡았다. 페이스는 작곡가 캐릭터를 좀 더 심도깊게 이해하기 위해 벨리니의 고향인 시칠리아를 방문했다고 한다. 음악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쪼잔하고 소심한 "인간적" 벨리니로 그려질 것인지, 아니면 벨리니의 "마지막" 작품의 첫날밤이라는 역사적 의의에 부합해 보다 "비범한 천재"로 그려질 지 사뭇 궁금하다.
*"Golden Age"의 프리뷰 영상. 연극 보러가기 전 오페라 "청교도들" 먼저 본다면 연극을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Golden Age" 관련 기사
Labels:
Bellini,
Golden Age,
I puritani,
Lee Pace,
Terence McNally,
리 페이스,
벨리니,
청교도,
테렌스 맥낼리,
황금 시대
Saturday, November 24, 2012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엘렉트라"(Elektra)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는 예전에 뮌헨에서 2005-2006 시즌에 봤었고 재작년인가 메트 오페라에서 봤었는데, 고전적인 메트 보다도 바이에른 주립오페라가 훨씬 내 기억에 인상깊게 남아있다. 오늘 유툽 돌아다니다가 그때 봤었던 뮌헨 버젼을 우연히 찾았다. 바이에른 주립오페라에서 한건 아니지만 그 사촌이라 할 수 있는 뮌헨필과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참여한 공연이다.
비단 "엘렉트라" 뿐만이 아니라, 여태 본 오페라를 통틀어서 이 공연은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유는 바로 독특한 연출 때문. 미니말리즘의 극단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순한 무대 (무대 소품도 거의 안 쓴다), 이에 부합해 조명또한 다채로움을 피한 채 붉은색과 하얀 빛이 중심이 된다. 뭔가 휑해 보일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무대 전면에 또 하나의 큰 벽을 놓음으로서 공간적으로 상당히 밀폐되고 답답하면서도 숨쉬기도 힘들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그 무대를 바라보는 청중들이 폐쇄공포증을 겪게할려고 작정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
이쯤해선 왜이리 무대를 답답하고도 비좁게 만들었냐는 불만이 있을법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는 "엘렉트라"가 전달하는 전반적인 드라마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합치된다. 아버지를 살인한 어머니와 숙부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지만 실제 오페라 상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복수에 이를 가는 엘렉트라, 그에비해 다소 소심하게 그려지는 여동생 크리소테미스, 그리고 엘렉트라 포스에는 다소 못미치는 아우 오레스테스. 이들에 대항해 언젠가 엘렉트라에게 죽어야할 악역이자 제물로 상정된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드라마상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엘렉트라가 클리템네스트라를 도끼로 죽이는 장면인데, 이 장면을 제외하고선 이목을 사로잡을 스펙터클한 장면이나 따로 솎아낼만한 사건은 거의 없다.
그래서 "엘렉트라"의 드라마적 중심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오페라 전체를 관통하는 강렬하고도 말초적인 긴장감이다. 무엇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으스스하면서 음울한 분위기, 광인처럼 보이는 엘렉트라의 복수에 가득찬 감정(이 복수심은 바로 엘렉트라의 실존을 정의한다), 이에 맞서 아가멤논 왕의 살인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이들이 내뿜는 심리적 갈등관계, 첨예한 대립이 바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궁전을 그대로 그린 사실적 무대가 아닌, 클립에서 보는대로 모던하면서도 압축적인 무대는 그러한 드라마적 긴장감을 극대화시켜 전달하는 효과를 낸다. 시각적인 눈요깃거리를 최대한 배제한 이러한 무대는, 동시에 또다른 긴장의 요체인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끔 한다. 포스트 바그너리안 음악어법의 극단을 이끈 슈트라우스 작품답게, 사실 음악만 들어도 "엘렉트라"의 강렬한 파토스가 고스란히 전달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팽팽한 긴장감이 지배하는 무대는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음악적 색채와 심리적 히스테리아를 중간 매체를 통하거나 방해물(distraction) 없이 "직접적"으로 청중에게 전달되게끔 한다.
이 연출에서 또하나 주목할만한 대목은 클리템네스트라를 도끼로 살인하는 장면이다. 이때 엘렉트라는 무대 뒤로 사라지지 않고 무대상에 그대로 있으면서 도끼로 땅을 찍어내린다. 그 행위가 보이는 바로 그 순간, 그 도끼에 살해되는 클리템네스트라의 비명 소리가 무대 뒤에서 처절하게 들린다. 이 살인장면은 그 잔인성 때문인지 몰라도 메트 연출에서는 엘렉트라가 무대 뒤로 들어가서는 클리템네스트라 더불어 모두 무대 뒤에 안보이게 하는 것으로, 그래서 음악만 들리는 것으로 처리되었었다. 그러나 클라이막스이자 엘렉트라의 드라마상 존재 이유가 실현되는 바로 그 순간에 주인공이 무대 뒤로 사라진다면 그 극을 보는 관객 입장에선 다소 김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무대 위에 엘렉트라가 그대로 있게 하며(주인공의 무대 존재, stage presence의 유지), 도끼로 사람이 아닌 땅을 내리찍는 행위를 함으로써 살인 장면을 "암시"하되 극단의 비명소리가 무대 뒤에서 들려짐으로써 클리템테스트라의 살해를 "실현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여태까지 유지되었던 극적 긴장감이 끊어지거나 줄어듬 없이 극대화된 채 그 정점을 찍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던한 연출은 작곡가 고유의 텍스트를 변형, 왜곡 시키거나 감독의 에고가 작곡가의 에고를 넘어서려는 만용이 느껴질 때가 많은지라 왠만하면 잘 마음이 가지 않는 편인데, 이번 "엘렉트라" 연출은 모던한 연출이되 드라마에 대한 관점이 작품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고 생각되기에 상당히 맘에 든다.
비단 "엘렉트라" 뿐만이 아니라, 여태 본 오페라를 통틀어서 이 공연은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유는 바로 독특한 연출 때문. 미니말리즘의 극단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순한 무대 (무대 소품도 거의 안 쓴다), 이에 부합해 조명또한 다채로움을 피한 채 붉은색과 하얀 빛이 중심이 된다. 뭔가 휑해 보일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무대 전면에 또 하나의 큰 벽을 놓음으로서 공간적으로 상당히 밀폐되고 답답하면서도 숨쉬기도 힘들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그 무대를 바라보는 청중들이 폐쇄공포증을 겪게할려고 작정하기라도 한 듯 말이다.
이쯤해선 왜이리 무대를 답답하고도 비좁게 만들었냐는 불만이 있을법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는 "엘렉트라"가 전달하는 전반적인 드라마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합치된다. 아버지를 살인한 어머니와 숙부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지만 실제 오페라 상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복수에 이를 가는 엘렉트라, 그에비해 다소 소심하게 그려지는 여동생 크리소테미스, 그리고 엘렉트라 포스에는 다소 못미치는 아우 오레스테스. 이들에 대항해 언젠가 엘렉트라에게 죽어야할 악역이자 제물로 상정된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드라마상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엘렉트라가 클리템네스트라를 도끼로 죽이는 장면인데, 이 장면을 제외하고선 이목을 사로잡을 스펙터클한 장면이나 따로 솎아낼만한 사건은 거의 없다.
그래서 "엘렉트라"의 드라마적 중심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오페라 전체를 관통하는 강렬하고도 말초적인 긴장감이다. 무엇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으스스하면서 음울한 분위기, 광인처럼 보이는 엘렉트라의 복수에 가득찬 감정(이 복수심은 바로 엘렉트라의 실존을 정의한다), 이에 맞서 아가멤논 왕의 살인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클리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이들이 내뿜는 심리적 갈등관계, 첨예한 대립이 바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궁전을 그대로 그린 사실적 무대가 아닌, 클립에서 보는대로 모던하면서도 압축적인 무대는 그러한 드라마적 긴장감을 극대화시켜 전달하는 효과를 낸다. 시각적인 눈요깃거리를 최대한 배제한 이러한 무대는, 동시에 또다른 긴장의 요체인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끔 한다. 포스트 바그너리안 음악어법의 극단을 이끈 슈트라우스 작품답게, 사실 음악만 들어도 "엘렉트라"의 강렬한 파토스가 고스란히 전달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팽팽한 긴장감이 지배하는 무대는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음악적 색채와 심리적 히스테리아를 중간 매체를 통하거나 방해물(distraction) 없이 "직접적"으로 청중에게 전달되게끔 한다.
이 연출에서 또하나 주목할만한 대목은 클리템네스트라를 도끼로 살인하는 장면이다. 이때 엘렉트라는 무대 뒤로 사라지지 않고 무대상에 그대로 있으면서 도끼로 땅을 찍어내린다. 그 행위가 보이는 바로 그 순간, 그 도끼에 살해되는 클리템네스트라의 비명 소리가 무대 뒤에서 처절하게 들린다. 이 살인장면은 그 잔인성 때문인지 몰라도 메트 연출에서는 엘렉트라가 무대 뒤로 들어가서는 클리템네스트라 더불어 모두 무대 뒤에 안보이게 하는 것으로, 그래서 음악만 들리는 것으로 처리되었었다. 그러나 클라이막스이자 엘렉트라의 드라마상 존재 이유가 실현되는 바로 그 순간에 주인공이 무대 뒤로 사라진다면 그 극을 보는 관객 입장에선 다소 김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무대 위에 엘렉트라가 그대로 있게 하며(주인공의 무대 존재, stage presence의 유지), 도끼로 사람이 아닌 땅을 내리찍는 행위를 함으로써 살인 장면을 "암시"하되 극단의 비명소리가 무대 뒤에서 들려짐으로써 클리템테스트라의 살해를 "실현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여태까지 유지되었던 극적 긴장감이 끊어지거나 줄어듬 없이 극대화된 채 그 정점을 찍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던한 연출은 작곡가 고유의 텍스트를 변형, 왜곡 시키거나 감독의 에고가 작곡가의 에고를 넘어서려는 만용이 느껴질 때가 많은지라 왠만하면 잘 마음이 가지 않는 편인데, 이번 "엘렉트라" 연출은 모던한 연출이되 드라마에 대한 관점이 작품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고 생각되기에 상당히 맘에 든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하는 뮌헨필. 엘렉트라는 린다 왓슨, 클리팀네스트라는 제인 헨셸, 오레스트는 알버트 도만. 제인 헨셸은 5월에 카네기홀에서 열린 "살로메" 콘체르탄테 공연 때 헤로디아스 역을 불렀었는데, 음색이나 연기력에 있어 가히 슈트라우스 스페셜리스트라 할만큼 뛰어난 해석력을 보여주었다.
Friday, April 13, 2012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오늘 페이스북에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클립이 올라온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선율이 너무나도 아름다움과 동시에 옛날에 오케스트라랑 같이 연주도 했던지라 나한텐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게다가 최근에 스승님께서 쇼팽의 선율 작법과 19세기 벨칸토 오페라의 성악 선율구조 간 긴밀한 연관 관계에 대해 수업 시간에 자료도 나눠주시고 실제 예들을 보여주셨던지라 언젠가 시간되면 다시 쇼팽 악보를 들여다봐야지 하고 있었다. 음악사 책에 쇼팽이 벨리니의 오페라를 상당히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런 면이 실제로 구체적으로 쇼팽의 음악에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악보와 문헌자료로 본적은 그때 수업 시간이 처음이었다.
역시나...다시 들어보니 쇼팽의 선율들은 정말 성악적이다. 긴 오케스트라 서주이후 나오는 주 선율은 피아노 대신 음성이 연주해도 될 듯 하다. 선율을 꾸미는 세세한 장식음 또한 벨칸토 아리아의 관습에서 따온 것. 스승님께서 예전에 "쇼팽과 벨칸토 오페라"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셨던 적이 있는데 얼른 원고 보여 달라고 이메일 드려야겠다.
역시나...다시 들어보니 쇼팽의 선율들은 정말 성악적이다. 긴 오케스트라 서주이후 나오는 주 선율은 피아노 대신 음성이 연주해도 될 듯 하다. 선율을 꾸미는 세세한 장식음 또한 벨칸토 아리아의 관습에서 따온 것. 스승님께서 예전에 "쇼팽과 벨칸토 오페라"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셨던 적이 있는데 얼른 원고 보여 달라고 이메일 드려야겠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악장 재현부.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상당히 성악적으로 들린다.
원래 5월달에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쇼팽의 1번을 카네기홀에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랑 협연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 문제로 취소되고 다른 연주자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폴리니의 1번 연주를 내 인생에 라이브로 듣는 날이 왔다고 정말 좋아하고 있었으나...아쉽게 되버렸다.
Wednesday, April 11, 2012
오베르의 "포르티시의 벙어리 아가씨"(La Muette de Portici)와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
어제 스승님께서 뉴욕 타임즈에 올라온 아티클이라며 전체 메일로 기사를 보내주셨다. 기사는 프랑스 그랑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인 오베르(Daniel-François-Esprit Auber)의 작품인 "포르티시의 벙어리 아가씨"가 라 스칼라에서 공연된 것에 대한 리뷰인데, 오베르가 바그너에 끼친 영향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이 오페라는 사랑도 잃고 가족까지 죽어버린 여자 주인공이 절망에 빠진 나머지 자살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엔딩이 바그너의 작품과 연관이 된다. 그 자살 행위는 한편으로는 성벽 위에서 뛰어내리는 토스카의 엔딩과 일단 비슷하긴 한데, 구체적으로는 용암이 분출 중인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는 점에서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의 마지막에 브륀힐데가 불타는 라인강 속으로 반지를 품고서 뛰어드는 것과 상당히 흡사하단다.
아래는 그 단락 원문과 번역.
"The ending of 'La Muette' is the kind of grand-opera extravaganza Wagner must have had in mind when conceiving the close of “Götterdämmerung,” though confusion exists among commentators about what actually happens. Fenella, still smarting over her abandonment by Alphonse and now grief-stricken after Masaniello’s death, hurls herself to a Tosca-like death. Some say she jumps into the crater of Vesuvius as it erupts, but the better — and certainly more plausible — reading of the stage directions is that she jumps into the lava of the erupting volcano."
“'벙어리 아가씨'의 엔딩은 그랑 오페라의 휘황찬란함의 전형인데, 이는 바그너가 “신들의 황혼”의 결말을 만들 때 염두해뒀을 것이라 생각된다. “벙어리 아가씨”의 마지막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논평가들마디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알퐁스에게 버림받은 것에 상처받은 페넬라는 이제는 마사니엘로의(페넬라의 오빠) 죽음 이후 슬픔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서 토스카의 비슷하게 자신을 [죽음의 나락으로] 던져버린다. 어떤이들은 그녀가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할 때 그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대 지시를 좀 더 그럴듯하게 해석한 것은 그녀가 분출하는 화산의 용암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The ending of 'La Muette' is the kind of grand-opera extravaganza Wagner must have had in mind when conceiving the close of “Götterdämmerung,” though confusion exists among commentators about what actually happens. Fenella, still smarting over her abandonment by Alphonse and now grief-stricken after Masaniello’s death, hurls herself to a Tosca-like death. Some say she jumps into the crater of Vesuvius as it erupts, but the better — and certainly more plausible — reading of the stage directions is that she jumps into the lava of the erupting volcano."
“'벙어리 아가씨'의 엔딩은 그랑 오페라의 휘황찬란함의 전형인데, 이는 바그너가 “신들의 황혼”의 결말을 만들 때 염두해뒀을 것이라 생각된다. “벙어리 아가씨”의 마지막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서는 논평가들마디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알퐁스에게 버림받은 것에 상처받은 페넬라는 이제는 마사니엘로의(페넬라의 오빠) 죽음 이후 슬픔에 빠져 허우적 거리면서 토스카의 비슷하게 자신을 [죽음의 나락으로] 던져버린다. 어떤이들은 그녀가 베수비우스 화산이 폭발할 때 그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대 지시를 좀 더 그럴듯하게 해석한 것은 그녀가 분출하는 화산의 용암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오베르의 이 오페라는 공연이 잘 안되는 듯 하지만, 바그너 작품에 나타나는 그랑 오페라의 영향을 연구함에 있어 반드시 눈여겨 봐야하는 작품이라 음악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하다 할 수 있다. 혹시나 음반이나 영상이 있는지 찾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알프레드 크라우스와 준 앤더슨이 주연으로 노래한 음반이 하나 보인다.
*유툽에서 찾은 "벙어리 아가씨"의 피날레. 비록 영상은 없지만 긴박하고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잘 전달되는 듯. 실황 공연을 정말 보고싶어진다.
Friday, April 6, 2012
Tristan und Isolde-메트로폴리탄 오페라 2016
최근 우연의 일치로서, 수업관련 활동(논문 읽기 또는 페이퍼 쓰기)하다가 잠시 기분 전환겸 인터넷 들어가서 페이스북이나 뉴욕타임즈를 보면 항상 작업 중이던 토픽과 관련된 것들이 한눈에 잡힐때가 많다.
내일 수업 준비를 위해 트리스탄 코드를 분석한 논문들을 읽는 중이었다. 스승님을 포함한 세명의 대가들이 트리스탄 코드에 대해 화성학적으로 과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를 주고받은 것이다(Tristan chord: viio7, French 6, suspension to V7 etc.). 그러다 잠시 기분전환 겸 뉴욕타임즈의 음악 섹션에 올리온 Peter Gelb(메트 오페라 총책임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런데 너무너무 중요한 정보 발견!!! 인터뷰 본문 중에
"...new production of Wagner’s “Tristan und Isolde,” scheduled for the fall of 2016, directed by Willy Decker, starring the soprano Nina Stemme and the tenor Gary Lehman, and conducted by Simon Rattle, who had a triumphant Met debut in Debussy’s “Pelléas et Mélisande” last season."
내일 수업 준비를 위해 트리스탄 코드를 분석한 논문들을 읽는 중이었다. 스승님을 포함한 세명의 대가들이 트리스탄 코드에 대해 화성학적으로 과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를 주고받은 것이다(Tristan chord: viio7, French 6, suspension to V7 etc.). 그러다 잠시 기분전환 겸 뉴욕타임즈의 음악 섹션에 올리온 Peter Gelb(메트 오페라 총책임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런데 너무너무 중요한 정보 발견!!! 인터뷰 본문 중에
"...new production of Wagner’s “Tristan und Isolde,” scheduled for the fall of 2016, directed by Willy Decker, starring the soprano Nina Stemme and the tenor Gary Lehman, and conducted by Simon Rattle, who had a triumphant Met debut in Debussy’s “Pelléas et Mélisande” last season."
2016년에 메트에서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올릴 예정인데, 사이먼 래틀이 지휘로 니나 슈템메가 이졸데, 게리 레만이 트리스탄을 부를 예정이란다. 래틀도 대단한 지휘자지만 마이 러브 바그너리안 소프라노 슈템메가 이졸데를 부를 예정이라니 너무 기대가 된다. 나에겐 최고의 이졸데가 바로 슈템메이다. 그때까지 어찌 기다리지..수십번도 더 본 클립이 바로 슈템메가 부르는 "Mild und leise"이다. 오페라의 제일 마지막에서 여주인공이 죽어버린 트리스탄의 환영을 보며 연정의 환희에 사로잡혀 거의 미친 상태로 부르는 대단원의 모놀로그이다.
메트의 야침찬 이 새로운 프로덕션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과연 라이브로 볼 수 있을까? 2016년 쯤이면 공부도 거의 끝났을 시점이라 어디 취직해있으면서 학교에 마지막으로 논문 defense하러 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슬슬 논문주제 정할 시점이 다가오고있다. 스승님도 독일 오페라와 이탈리아 오페라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고 그러시고...그전엔 논문 관련해서 시험 주제도 정해야 하는데 역시 독일이냐 이탈리아냐 이게 관건이다. 여러모로 결단을 내려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까진 바그너를 중심으로 한 독일 오페라가 더 끌리지만 요즘 메트에서 봤던 베르디, 푸치니 작품들로 인해 이탈리아쪽도 호감도가 급상승 중이라 둘 중 하나를 택하기가 쉽지가 않다. 아무튼 뭘 선택하든 간에 나의 논문은 오페라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논문 마치고 운 좋게도 계속 뉴욕에 붙어있게 될지 아님 어느 다른 지역으로 자리잡아 가게 될지 모를 일이다. 허나 뉴욕을 떠나게 되면 가장 아쉬운 일이 메트 오페라를 실황으로 못보게된다는 것인데, 이는 생각만 해도 우울해진다. 나의 뉴욕생활에 있어 학교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트리스탄 코드 관련 동영상으로 예전에 봤었던 BBC의 바그너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영국의 유명한 코메디언인 스테판 프라이(유태인이다)가 진행자로 나선 프로그램이다. 아래 클립은 그 중 트리스탄 코드에 대한 설명부분이다. 간절한 그리움과 연정을 담은 동경을 표현하는 트리스탄 코드를 바이로이트의 바그너의 생가인 Villa Wahnfried의 피아노로 직접 쳐주면서 얘기하는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2006년도 봄, 햇살 좋을 때 바이로이트 찾아갔던 생각도 나고...
피아노는 스타인웨이인데 1876년 바이로이트 축제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스타인웨이 회사에서 선물한 것이다. 물론 바그너가 저 피아노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한 것은 아니다. 오페라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1857-59년에 작곡되었고, 1865년 현재의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 극장(이 곳 역시 늘상 드나들던 곳이라 생각만 해도 그립다)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피아노는 뉴욕산으로 찍혀있는 것 같은데 지금 사는 동네가 예전에 스타인웨이 피아노 미국 지점이 있던 곳이라 도로 이름도 "스타인웨이"이다. 혹시 거의 150년전에 우리 동네에서 만들어서 대서양을 건너 바이로이트까지 배로 실어간 것일까? 궁금하다...
트리스탄 코드 관련 동영상으로 예전에 봤었던 BBC의 바그너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영국의 유명한 코메디언인 스테판 프라이(유태인이다)가 진행자로 나선 프로그램이다. 아래 클립은 그 중 트리스탄 코드에 대한 설명부분이다. 간절한 그리움과 연정을 담은 동경을 표현하는 트리스탄 코드를 바이로이트의 바그너의 생가인 Villa Wahnfried의 피아노로 직접 쳐주면서 얘기하는 걸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2006년도 봄, 햇살 좋을 때 바이로이트 찾아갔던 생각도 나고...
피아노는 스타인웨이인데 1876년 바이로이트 축제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스타인웨이 회사에서 선물한 것이다. 물론 바그너가 저 피아노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한 것은 아니다. 오페라는 그보다 훨씬 이전인 1857-59년에 작곡되었고, 1865년 현재의 바이에른 주립 오페라 극장(이 곳 역시 늘상 드나들던 곳이라 생각만 해도 그립다)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피아노는 뉴욕산으로 찍혀있는 것 같은데 지금 사는 동네가 예전에 스타인웨이 피아노 미국 지점이 있던 곳이라 도로 이름도 "스타인웨이"이다. 혹시 거의 150년전에 우리 동네에서 만들어서 대서양을 건너 바이로이트까지 배로 실어간 것일까? 궁금하다...
*바그너는 악보의 첫 부분에 "langsam und schmachtend"라고 표기하였다. 이는 "slow and languid"라고 영어판에 병기되어있는데, 독일어 네이티브이신 샤흐터 선생님께서 "languid"란 단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하셨다. 즉, "schmachtend"는 단순히 나른하고 힘없는 것이 아니라, 연정에 사무친 그리움땜에 바짝바짝 말라가고 죽어가는 의미라 하셨다.
Subscribe to:
Posts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