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21, 2011

마리아 칼라스의 "La mamma morta"(어머니는 돌아가시고)와 영화 "필라델피아"

지난번 수업시간에 스승님과 어쩌다가 오페라의 세계에 접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하던 중 마리아 칼라스를 주로 들으면서 오페라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셨다. 칼라스 목소리 자체는 "strange voice"임에 비해 노래에서 마성의 힘이 느껴진다고 그러시던데, 칼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완전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이유는, 칼라스 목소리에서 가끔씩 감지되는 심한 wobble은 정말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목소리 자체도 텁텁한 편이고 그렇다고 테크닉이 카바예만큼 압도적으로 좋은편도 아니고. 칼라스의 전설적 명연이라 일컬어지는 벨리니의 "노르마"를 비롯해 유툽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클립들을 들어봤지만 이때까지 한번도 칼라스가 다른 성악가들에 비해 No.1으로 선택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 칼라스가 최고로 다가오는 유일한 아리아가 딱 하나가 있는데, 바로 조르다노(Umberto Giordano)의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enier) 중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이다. 이 노래만큼은 칼라스가 최고다. 그의 다소 어두운 음색에서 울려퍼지는 처절하면서도 힘있는 표현력은, 연인의 정적의 마음을 돌려놓는 마달레나의 진심어린 마음을 너무나도 '정직'하게 보여준다. 인간적인 목소리의 호소력 있는 울림...적어도 이 노래에 관해서라면 칼라스말고 다른 성악가들은 차선에 머물 것 같다.


*이 아리아는 영화 "필라델피아"에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극중 에이즈 환자인 톰 행크스가 변호사인 덴젤 워싱턴의 무심했던 마음을 여는 것은, 말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감정적 호소도 아닌 바로 이 아리아이다. 마치 오르페우스의 리라 연주가 지상과 지하세계를 일깨웠던 것처럼...칼라스의 목소리로 이 아리아가 들려지는 동안 음악에 완전히 몰입된 채 선율과 가사를 따라가는 톰 행크스를 본 후 변호사인 덴젤 워싱턴은 이 에이즈 환자에 대해 마침내 깊은 공감과 동화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Youtube Cr: toxicorangetunes)

프랑스 혁명의 날, 귀족의 딸이였던 마달레나는 엄마도 죽고 집도 불에타고 하녀 베르시와 함꼐 도망자 신세가 된다. 하룻밤만에 사회적 지위, 가족, 재산 모든 걸 잃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 마달레나집 하인의 아들이었던 제라르는 혁명당원이 되어, 반혁명분자로 찍혀버린 안드레아 셰니에(마달레나의 연인)를 잡으려 혈안이 되어있다. 제라르는 주인댁 따님이었던 마달레나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삶의 저 벼랑 끝에 서있던 자신이 셰니에와의 사랑의 힘으로써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음을 이 아리아를 부르면서 보여준다. 마달레나의 호소력있는 노래에 감동받은 제라르는 그녀에 대한 마음을 결국은 접으며 셰니에를 도와주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다(이 부분은 마치 바그너의 "발퀴레" 2막 4장인 브륀힐데와 지그문트 사이의  "Todesverkündigung"장면을 연상시킨다. 죽음을 선고하기 위해 지그문트를 찾아간 브륀힐데는 지글린데에 대한 지그문트의 죽음을 불사한 사랑에 감동받아 결국은 어버지인 보탄의 명령을 어기고서 지그문트의 편에 서게된다).

아리아의 초반부에선 마달레나가 얼마나 절망과 좌절의 상황에 있었는지를, 후반부에선 셰니에와의 사랑을 통해 이를 극복하였는지를 그린다.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그 전환지점에서 단선율의 첼로를 배경으로 칼라스의 목소리 라인이 D에서 D# (2:44 지점-어둡고 암담했던 단조에서 장조로의 모드 변화를 알리는 시그널)으로 넘어갈 땐 마치 하늘에서 한줄기 빛이 서서히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극적인 변화를 이끄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이 반음 진행에 의해 나온다. BDF# 단화음에서 BD#F# 장화음으로 바뀌게 됨과 동시에, 음악 형식적으로도 레치타티브 및 서주역할의 Part1에서 보다 선율적이고 역동적인 리듬적의 Part2로 넘어가게 된다. 필라델피아 클립에 보면은 톰 행크스 또한 D에서 D#으로의 진행이 불러오는 음악적 의미(단조에서 장조로)와 가사 및 드라마의 의미(절망에서 희망으로)에 대해 깊이 느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 얼굴 표정과 온 몸의 제스쳐로 표현되고 있다. 아래의 가사는 희망을 그리는 후반부 내용.

[...]
che a me venne l'amor!
Voce piena d'armonia e dice
Vivi ancora! Io son la vita!
Ne' miei occhi è il tuo cielo!
Tu non sei sola!
Le lacrime tue io le raccolgo!
Io sto sul tuo cammino e ti sorreggo!
Sorridi e spera! Io son l'amore!
Tutto intorno è sangue e fango?
Io son divino! Io son l'oblio!
Io sono il dio che sovra il mondo
scendo da l'empireo, fa della terra un ciel! Ah!
Io son l'amore, io son l'amor, l'amor

당신은 반드시 사셔야 합니다, 저는 삶 그 자체입니다!
당신의 천국이 제 눈 속에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제가 그 눈물을 닦아드리겠습니다.
제가 당신과 함께 걸으며 버팀목이 되드릴 것입니다!
미소와 희망을 가지세요! 저는 사랑입니다!
피와 고통의 수렁에 빠져 계십니까?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잊게 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세상을 구한 신입니다.
저는 하늘에서 내려와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 것입니다!
저는 사랑, 사랑, 사랑입니다!

*톰 행크스의 완전히 몰입한 명연기가 빛나는 장면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위에서 언급한 전반부에서 후반부로의 전환지점에서 밝은 조명이 갑자기 컴컴해지면서 벽난로의 이글거리는 붉은 불빛이 이를 대체한다. 마치 마달레나와 톰의 삶에 대한 의지의 불꽃이 솟아로오르는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 것"이라는 가사에 부합하듯 카메라 앵글 또한 위에서 내려보는 시선을 취하고 있다. 아리아는 처음에는 객관적 감상의 대상으로 들려졌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주인공 인물의 내면적, 주체적 목소리로서 승화된다. 이 영화의 감독, 촬영감독, 배우는 "La mamma morta"가 오페라의 어떤 상황에서 노래되는지, 아리아의 음악적 구조가 어떻게 가사와 부합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Youtube Cr: prussianblu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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