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가문을 위한 희생 (대의명분) VS 실제 행복 추구 (개인적 삶)
이 딜레마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고전의 한 구절을 Scott Burnham의 “Beethoven Hero”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그 해석들 중 공통점은 영웅을 죽거나 살거나에 상관없이 승리자로 읽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러한 승리자가 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적들을 대항해 맹렬히 싸우다가 결국은 어렵게 어렵게 물리침으로써 승리자의 월계관을 쓸 수도 있으며(결국은 살아남는 결말), 둘째로 장렬히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영웅의 명예를 얻을 수도 있다(결국은 죽게되는 결말). 영웅에 대한 이 두 가지 시나리오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저자인 Burnham은 호머의 "일리아드" 중 아킬레스의 말을 인용한다.
In Marx’s interpretation, Napoleon can become Napoleon only
through successful interaction with his troops. For Lenz, the hero must die in
order to obtain eternal glory. This was the fatal transaction made explicit by
Achilles in the Iliad: as he says in book9, lines 410-416: “I carry two sorts of destiny toward the day of my death. Either, if I
stay here and fight beside the city of the Trojans, my return home is gone, but
my glory [kléos] shall be everlasting; but
if I return home to the beloved land of my fathers, the excellence of glory [kléos]is gone, but there will be a long
life left for me, and my end in death will not come to me quickly.”
(quoted from Scott Burnham, Beethoven Hero, pp.19-20)
결국 작가들의 해결책은 이 둘을 어떻게든 중도에서 조율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복수를 완벽히 자의로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령이와의 사랑도 지켜나가는 길. 이는 김승유의 "눈이 멀었음"을 통해 어느정도 가능해진다. 승유가 어느날 복수가 갑자기 하기 싫어서, 또는 세령이랑 그냥 살고 싫어서 복수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 멀었기 때문에 복수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는, 복수 중단에 대한 외부적, 타자적인 요인을 설정함으로써, 대의명분의 추구에서 개인의 행복 추구로 넘어가는 변환이 어느정도 필연성을 가지며 그러한 극에서 극으로의 이동이 다소 덜 무리하게 느껴지는 효과를 나았다. 물론, 눈의 "잃음을 당했다"라는 점 때문에 완벽한 영웅으로서의 면모는 다소 희석된 점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결말에 등장한 김승유는 금상 위 좌상이었던 김종서의 막내 자제도 아니며, 문장과 글에 능하던 성균관의 지적인 학자도 아니며, 수양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반란군의 수장도 아닌, 그저 이름없는 일개 서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김승유가 자의로 대의명분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겁쟁이"가 되버리는 무리수에 빠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행복도 잃지 않는 결말은, 결과적으로 영웅성이 약해졌다 할지라도 극단적인 두 가치를 주어진 상황 하에서 할수 있는 한 최대로 부드럽게(그래서 공감가고 설득력이 느껴지는) 중재한 것으로 보인다. 김승유는 끝까지 복수의 길을 가고 싶었지만(그래서 옥사에서 세령이랑 아기까지 놓아두고선 죽으려고 했었다), 이제는 장님이 된버린 현실이 도저히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복수의 길을 포기한 것은 완전한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며, 개인의 영달 추구라는 결과는 복수포기(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와 동시에 얻게되는 필연적인 선택이 되버린다.
확실히, 장님이라는 설정은 드라마 전반부에 보여줬던 잘생기고, 멋있고, 비쥬얼적인 면으로 압도했던 김승유와는 너무 대비된다. 하지만 그런 무리수의 설정을 통해서라도 해피엔딩을 이끌어낸 작가들은 아킬레스도 결코 결론 내릴 수 없었던 딜레마를,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으로 풀어낸 것으로 생각된다. 어려운 난제를 최선으로 매듭지은 작가진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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